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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원 Oct 01. 2024

11. 시원하고 달콤한

고진감래

아마 운동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 중에는 운동을 마친 후 먹는 즐거움이 큰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기쁨을 즐기며, 산을 오를 때면 김밥, 닭강정, 라면, 과일과 같은 음식을 가방에 가득 채워 넣는다. 나열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이 간식들을 생각하면, 때로는 등산의 목적이 먹는 즐거움으로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땀을 한껏 흘린 뒤 먹는 음식은 정말 달콤하다.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힘든 일을 마친 후의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달다. 등산 후 마시는 꽝꽝 얼린 물 한 잔, 그리고 힘겹게 오르막을 넘은 후 먹는 김밥은 무슨 김밥인지조차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그 순간에는 어떤 음식이든 특별한 식사처럼 느껴진다. 마치 가끔 아버지들이 식사 후 "역시 물이 제일 맛있다!"라고 외치시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보니,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웃기겠지만, 운동 후의 ‘맛있는 행복’을 놓치지 못한 탓일 것이다. 혹시 운동하면서 살이 너무 빠져서 고민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또 음식은 내게 함께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담기도 한다. 특별하지 않은 먹거리라도 그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어 느껴진다. 음식 하나에 담긴 추억은 그 순간을 되돌아볼 때 더 값진 이야기를 만들어주기 마련이었다.




09월 07일

스페인은 와인으로 유명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널린 포도밭이 수없이 펼쳐졌고, 덕분에 순례자의 메뉴에는 항상 무료 와인이 곁들여졌다. 후기를 보니, 이 와인 때문에 순례길을 마친 후 살이 쪄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꽤 있었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지만, 물보다 저렴하고 달콤한 와인을 보니 그 심정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에 많게는 30km를 걷는 동안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도,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도 좋지만, 먹는 즐거움 또한 매우 컸다. 종종 우리는 그저 길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보상만을 떠올리며 걷곤 했다. 이때 나에게 주어진 보상은 "얼음을 동동 띄운 콜라"였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가득한 햇살 아래서 10kg가 넘는 배낭을 메고 걷다 보면, 등이 땀으로 흠뻑 젖고 이마와 머리에서는 지글지글 열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치이익’ 소리를 내며 따끔하고도 시원하게 목을 적셔주는 탄산음료였다.


그날도 나는 그런 보상과 기대를 안고 산솔(Sansol)을 향해 걸었다. 전날보다 더 긴 거리를 걸어야 했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날씨에 쉽게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고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선글라스와 팔토시까지 착용한 채 걸었지만,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습하지 않고 건조한 더위였다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였고, 오빠와 함께 순례길을 시작한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나처럼 술을 즐기지 않는 그녀는 무더운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콜라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콜라 마시고 싶어!"라고 외치며 힘을 북돋아 주었고, 긴 길을 함께 견뎌냈다. 사소한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콜라를 외치며 걷던 우리가 떠오른다.


때때로 우리는 여행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풍경이나 화려한 건축물보다는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작은 순간들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길을 잃었을 때의 우스운 이야기나, 마트에서 산 과자 하나가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우리 길 잃어버렸잖아~”라는 이야기만 시작해도, 그날의 하루가 생생히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든 있을 것이다.


라일라와 나에게 그 추억은 콜라였다. 순례길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종종 콜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거창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시간 속에서 나눈 소중한 추억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소한 즐거움은 이따금씩 서로를 떠올리게 하는 고마운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제 나는 시원하고 톡 쏘는 콜라를 마실 때마다, 라일라와 함께 콜라를 외치며 뜨거운 햇빛 속에서 걸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콜라 캔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치이익-' 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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