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t h, 길 위에서
대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회사에 입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느낀 적이 있었다. 혹은 높은 정상에 올라서기만 하면, 원하는 자리에 도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 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높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비슷한 허무함을 느끼곤 한다. 정말 사고 싶었던 옷이나 신발을 손에 넣고 나서 의외로 "괜히 샀나?"라는 생각과 함께 무덤덤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손에 쥐는 순간 그토록 원하던 것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들 말이다.
치열하게 달려온 날들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종종 매너리즘을 동반하기도 한다.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여정과도 같다. 고통 속에서는 편안함을 갈망하고, 편안함 속에서는 다시 무언가를 갈구하며 고통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마치 도파민에 중독된 것처럼 말이다.
여러 산을 오르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풀코스 마라톤까지 달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 끝에서 마주할 감정이 두려워지곤 했다.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앞에 섰을 때, 42.195km의 피니시 라인을 넘었을 때, 그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산을 천천히 오르고 싶어졌다. 줄어드는 순례길이 아까워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싶었다. 다가오는 마라톤의 디데이가 조금만 더 천천히 다가왔으면 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내가 은연중에 느낀 그 마지막에서의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와 산을 오르고, 긴 거리를 걷고 뛴 지 3년이 지났다. 그전까지 내 생활반경은 퇴근 후 집이 전부였다. 7평짜리 원룸, 그 안에서도 방 한쪽에 놓인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공원을 걸어 나와 헬스장을 찾았다. 헬스장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공원에서 뛸 체력을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600m짜리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처음 발을 내딛는 게 어려웠지,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내 생활반경은 점차 1700m 높이의 산과 10,590km 떨어진 타지까지 넓혀졌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 "왜 갑자기 운동을 해?"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다음은 뭐야?"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운동을 멈추면 주위 사람들이 더 놀랄지도 모른다.
3년 동안 수많은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길들 위에 '정답'은 없었다. 800km를 걸어도, 42.195km를 뛰어도 길 위에 서기 전과 후의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큰 깨달음을 얻어 인생이 180도 바뀐 적도 없었고, 외면하거나 부딪혔던 문제들이 해결된 적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여전히 이전과 다를 것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산을 찾고 길을 걸으며, 쉼 없이 달리고 있다. 길 위에서 '정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얻는 것은 정말 많았다. 길은 인생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걸까? 시험에야 정답이 있겠지만, 인생이라는 여정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속도로 가는지도, 어떤 방법으로 그 끝에 도달하느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도착지는 산 정상도, 산티아고 대성당도, 두 다리로 달려 도착한 올림픽공원도 아니었다.
한계를 정하지 않고 길 위에 서다 보니, 사람들이 걱정하는 '매너리즘'에 빠질 틈도 없었다. 그저 나만의 페이스로, 나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내가 길 위에 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킬리만자로의 우후루피크와 세계 7대 마라톤, 그리고 두 번째 카미노를 꿈꾼다.
내가 가는 곳은 1950m를 올라 만난 백록담이 되기도 했고, 800km 떨어진 산티아고가 되기도 했다. 42.195km를 달려 도착한 피니시 라인도 내가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의 마지막 도착지가 아니었다. 내가 가는 곳은, 내 두 발로 설 수 있는 모든 곳이다.
에필로그. 너의 길
이 글은 여기서 마치게 된다. 하지만 글이 끝난다 하더라도, 내 두 발이 닿는 길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당신에게도 마음을 전한다. 이제 책을 덮고, 당신만의 길을 떠나보기를.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길 위에서의 모든 순간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