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배운 마음 근육 성장기
바퀴 달린 것에는 잘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발자전거 이후로 바퀴가 2개인 것은 오로지 킥보드만 탈 수 있었다. 어릴수록 겁이 없기 마련이었다. 스릴이란 것이 참 좋았던 초등학생 때는 높은 언덕에서도 킥보드를 타고 내려와도 두렵지 않았다. 설령 도로의 배수구 구멍에 바퀴가 걸려 넘어져도, 그땐 다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빠가 은색으로 빛나는 멋진 두 발자전거를 사오셨다. 이전에 타던 자전거들보다 훨씬 얇고 세련되어 보였고, 어린 나에게는 아주 어른스러운 자전거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도움으로 시작한 두 발자전거 도전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아빠가 뒤에서 잡아주시지 않으면 금세 멈추거나 넘어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다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져만 갔고, 자전거 안장이 부쩍 높아진 것도 불안감을 더했다. 중심을 잡는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자전거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상상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는 걸 포기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탈 때면, "난 못 타"라고 말하고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타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다만 넘어질 거라는 상상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래서 타고 싶었어도 꾹 참았다. 아마도 난 쭉, 평생, 자전거는 못 타겠다고 단정지었다.
순례길에서의 어느 날, 한인 어머님과 걷던 중이었다. 등산과 운동을 즐겨하시던 어머님은 곧이어 자전거에 도전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마냥 즐거운 경험은 아니셨다. 자전거를 한창 타실 때 마주 오는 아이와 어른이 있었고, 그들을 피하고자 방향을 틀었을 때 크게 넘어지셨다고 하셨다.
그 사고의 여파로 어깨가 심하게 다치셨었고 며칠은 입원을 하실 정도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다시 자전거를 다시 타는 것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으셨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에게도 도전해 보라며 용기를 주셨다.
마음 한편에는 아 순례길이 끝나면 꼭 자전거를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순례길이 끝나고 산을 오르고, 많은 거리를 달렸다. 꾸준히 운동하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망설였을 선택도 이제는 과감하게 할 수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그래서 그런 걸까, 불쑥 자전거에 도전이 피어올랐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내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전거 위에서 찍어 보여줄 때마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그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달라고 말했고, 나의 두 번째 자전거 도전이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가기 좋은 봄이었다. 친구보다 일찍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한 나는 먼저 자전거를 빌렸다. 대여소 아저씨께 자전거 안장을 최대한 내려달라고 말씀드리니, 아저씨는 한 번 타보라고 말씀하셨다.
우습겠지만 그때의 난, 자전거를 아직 못 탄다고 하면 혹시 아저씨께서 자전거를 빌려주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웃으며 친구가 오면 타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자전거를 끌고 갔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니 자전거 손잡이를 끄는 것조차도 어설퍼보이는 듯했다.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조금 기다리자 친구가 도착하였다. 나는 인터넷 영상에서 본 자전거 타는 방법을 떠올리며, 하나씩 시도했다. 친구는 옆에서 그런 나를 보며 내가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두 발로 자전거를 밀면서 타는 연습부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한 발을 떼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발을 모두 떼고 타야 하는 순간이 왔다. 두발을 떼고 중심 잡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친구는 내리막길에서 한 번 타보라고 권유했다. 아직 두 발을 떼지도 못하고 중심도 못 잡는데 내리막길이라니! 조금 겁이 났다.
그러나 약한 내리막길에서의 도전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내리막길에서 속력을 얻자,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내리막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말로는 못 타겠다고 하였지만, 다리는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았던 것 같다.
이후 그 감을 익혀보자는 친구의 말에 몇 번의 내리막길을 내려왔고, 나는 어느덧 평지에서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채 안 돼 자전거를 배운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그저 두려움의 크기를 조금 줄였을 뿐인데, 성공은 훨씬 가까이 있었다.
자전거 타기에 실패하고 성공하는 데에 2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동안 내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조금씩 성장한 덕분일까. 이제는 두려움을 조금씩 작아지게 하는 방법을 배웠다.
성장기 동안에도 성장하지 않았던 두려움의 감정은, 훌쩍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시간이 흘러 변하였다. 누군가는 "고작 자전거 타는 일에 이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해?"라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작고 사소한 경험이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음은 계속 성장하는 듯하다. 그 성장의 과정은 작은 선택과 도전에서 비롯되었다. 정말,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