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장석주 밥
오늘날 우리는 밥을 단지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을 채운다는 의미로 먹기보다는 소통의 매개와 소속감을 느끼며 밥이 주는 문화까지도 아우르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는 삶의 목적과도 유관하며 생명 생존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현대인은 대체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삶 속에서 좌절을 느낄 때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 부여를 하기 어렵고 만족감도 느끼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영위하려고 밥을 얻기 위한 생존에 급급하여 압박감이나 피로에 억눌리며 살아간다
모든 정신력이 바닥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삶에 절망한다 이처럼 모든 것을 소진하기 전에 자신을 지키려는 심리적 반응이 나타난다 이는 삶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소통문제 등에서도 적용된다 이 반응은 삶에서 지친 현대인에게는 욕구의 좌절로 나타나며 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사람들은 행복과도 멀어지게 된다
시에서 개다리소반은 너비32센티 높이 24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그릇이 8개 정도 놓인다 그런데 시에서 화자는 더운 밥 한 그릇을 올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더운밥과 맞바꾼 여러 불손한 정황들이 전개되고 그것은 전혀 즐거운 밥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참고 인내하는 사회적 관계와 그 자체를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
그런데 이 밥의 의미들은 모두 화자의 선택 여부에 달렸다 이는 실존적 공허와 관련되며 무의미한 인생과 직면한 가운데 절망 극복의 과정을 거쳐 긍정적 의미 관계로 나아간다
VE 프랑클에 따르면 실존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혹은 영적인 차원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어떤 최악의 환경이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든 우리는 다양한 차원으로 자신을 구분하는 일은 가능하며 그에 가치를 두고 지키려는 노력이 바로 실존의 확인으로 이어진다고 깨닫는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상상으로 느끼는 윤리의식에서 나오는 신경증적 죄책감과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실존적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데 이 죄책감은 더욱 자신을 사려 깊게 만드는 긍정적 불안으로 작용된다 시의 화자도 마찬가지이다
밥 한 그릇을 두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끝없이 반성하며 윤리적 의식이 충만한 반성을 한다 또한 양심과 비양심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다양한 차원으로 구분도 짓고 그러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삶의 의미를 찾는 노력도 한다 이 이 자세는 우리 사회가 원만하고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데 꼭 있어야 할 존재로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