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쌀 한 톨

by 김지숙 작가의 집

쌀 한 톨 앞에 무릎을 꿇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이 부유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쌀 한 톨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해 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정호승 쌀 한 톨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삶을 영위하려면 먹어야 하며 이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본능이다 먹는 행위는 누구나 경험 가능하며 따라서 음식은 인간의 삶에서 누구나가 접하는 가장 보편성을 지닌다 이러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상대에게 비교적 쉽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에 해당된다 우리가 소통하려는 이유는 생존을 넘어 자기 인식에 대한 확인을 통해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게 된다 화자와 아버지 간의 의사소통은 쌀 한 톨을 가운데 두고 이루어진다

즉 아버지의 가치관이나 심리적 환경이 화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쌀 한 톨에 무릎을 꿇는다는 부분은 쌀한 톨이 바로 매슬로우의 자기실현의 단계에 해당되며 이 음식은 가능한 행복을 위한 매개가 된다

시에서는 쌀 한 톨과 인생의 대조를 통해서 삶의 깊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어쩌면 어릴 적 가슴에 새겨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트라우마가 되어 현재 속에서도 여전히 생생하게 재생 반복된다 조그만 한 톨의 쌀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인간의 삶을 부유하게 이끌어간다는 말은 현재의 기억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더해져서 화자에게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피하기보다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보다 나은 상왕을 만들어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쌀 한 톨 안으로 난 길은 삶 속에서 주어진 길로서 화자 자신이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는 힘든 시련을 의미하며 이는 피하려는 것들과 대면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 과정을 거쳐 시련을 극복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결국 내면에 삶의 가치를 두고 본질적인 자신을 만나서 타협하는 공간이 바로 쌀 한 톨 안으로 난 그 길이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화자는 자신이 키워 낸 ‘쌀 한 톨’의 의미로 주어진 삶에서 존재할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고 그러한 자신의 자유 의지로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고자 노력한다

평화의 토대는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이해한다면 타인의 가치도 이해하게 된다 이 다양성이란 희망과 재생이 자라는 바탕이 되며 동시에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데 있다 따라서 차이를 존중하고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혹은 상상력의 관대함까지도 품어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Jonatdan Sacks 2007)

이 시의 화자 역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이해하며 그들의 생업에 충실한 모습을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과 다른 점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타인의 삶에 숙연한 화자의 태도를 읽게 된다 이 점은 아들러가 말하는 인간의 이해(Menschenkenntis)로 이는 자기겸손을 전제로 성립된다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인간의 본성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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