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능금이 붉으면
가을은 다 익었다
한 햇살 풀고 한 햇살 당겨
작은 해를 가지 끝에 옮겨다 달아
빛이 난다
꾹 참았던
눈앞에 펼친 단단한 유혹
부풀어 오른 순간
쉽게 눈이 먼 부끄러움은
단풍보다 더 붉은
꽃단풍이 된다
가을이 오면 영남알프스 일대를 자주 찾는다 단풍도 단풍이지만 발갛게 잘 익은 길거리의 능금 밭을 바라보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오래전 농업기술센터가 주관하는 <도시농부 체험학습>으로 단체로 능금농원을 찾았다 가을이라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 있는 능금 과수원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신났다 농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빠져들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은 벌써 저 멀리 진도를 빼서 나는 이미 멋진 능금 과수원 원장이 되어 사과를 따고 있다
능금나무 과수원 등 이런저런 종류로 생각하면서 대형 버스에 몸을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던 지갑과 핸드폰이 없다 한 가지 일에 빠지면 다른 일은 자주 잊는다 하지만 잊은 곳은 대체로 역 추적해서 대부분 다시 찾거나 잃어버린 장소를 알아내니 치매는 아닌 것 같다 그곳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났다.
집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지나 어두워지고 나서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고 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까 라는 의구심으로 차를 몰고 다시 그 장소로 갔다. 꽤 먼 거리라 영남알프스 일대에 도착하니 주변은 캄캄했다. 내가 핸드폰을 찾으러 왔다는 생각을 순간 잊고 달빛에 비친 능금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다. 빨리 찾아야 한다는 채근에 과수원 밖 도로변 화장실 정자 안에 들여다보니 잃어버린 내 물건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있다. 다행이다 물건을 챙겼다 오전 나절에 본 능금과는 다른 얼굴이다. 이왕 늦은 것 잘 생기고 멋진 밤에 더 빛이 나는 능금 알들을 먼발치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돌아왔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한동안은 정신을 차리고 물건을 두고 오는 일 잃어버리는 일이 뜸하다 이게 문제다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사는지 나도 참 참 참 한심하다 덕분에 시 한 편을 건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