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증후군
무엇이든 쟁여놔야 안심되는
나는 저장장애일까
"쟁여 놓고도 사고 또 사는 엄마는 다람쥐 증후군이야"
낙엽 푹푹 밟히는 아랫목에 모아둔 도토리들은 이른 봄, 어린 다람쥐 이유식이 되고 못 다 먹은 밥들은 연초록 상수리 숲이 되어 그 푸름이 온 산 메아리를 부르고 오래된 그루터기에서 새 생명도 자라지
생명이 되는 푸른 먹거리
도도리 나무숲만큼 쟁여놨다가
햇살 고운 날
따뜻한 이들과 달게 나눠 먹어야지
늘 퍼주기를 즐기는 이러한 나의 습관은 엄마를 닮았다 내가 엄마에게 한 소리를 나 역시 딸에게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흉보면서 본본다>
좋은 일일이든 나쁜 습관이든 자신도 모르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길들여지고 닮아가는 것. 그러면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 그것이 관습이 되고 전통이 된다지만 나는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이 버릇을 고치는 계기로 삼았다
나로서는 주고 싶고 줄만큼 괜찮다 싶어서 주지만 받는 상대의 입장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상대의 판단이나 상황이 나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설사 달라고 달라고 해서 받아가더도 어느 틈엔가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질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자주 내지 않고 내더라도 e-book으로 내기로 했다 시집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내지도 않지만 어떤 기회로 내더라도 첫 시집을 낼 때만큼 많은 양을 내지는 않는다 꼭 필요한 양만큼만 낸다
그런데 시골살이를 하다 보니 또 쟁여놓고 살아간다
김 생수 견과류 후레이크 곰탕 사과 탄산수 헛개차 우유 초콜릿 라면 비스킷 현미쌀 찹쌀 귀리 보리쌀 팥 수수 조 등등 비록 생필품이지만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꽉 차도록 줄을 지어 쟁여놨다. 택배가 있어 누리는 풍요다 마치 작은 편의점 매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딸애가 본다면 분명 또 한소리 들을 거다
생각해보면 요즘 나는 그곳에 잔뜩 도토리를 쌓아놓고 살아간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이 생활습관은 달라질까 이곳 상황상 행여 누구라도 갑자기 오면 무엇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자주 부족한 것이 많은 곳이라 소홀히 대접하는 우를 범하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부족한 것을 못 견뎌하는 것에서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