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데기는 그 번데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 겨울이 다되어 가면 하굣길 국민학교 입구에는 번데기를 파는 곳이 있었다 벌레를 무지 싫어하는 나로서는 생김새로 보면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지만 그때는 번데기가 뭔지도 모르고 사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창 배고픈 길에는 솥에 가득한 번데기 냄새가 입맛을 당겼다
아주 작은 신문지조각을 돌돌 말아서 작은 국자로 퍼넣으면 반은 밖으로 다 떨어지고 반도 채 담기지 않는 양으로 어린이들의 주머닐 강탈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추위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번데기로 하굣길이 즐거웠다 그 조그만 한 봉지를 한알씩 오물거리고 오다 보면 어느새 집에 다 왔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번데기 간식도 함께 졸업했다 중학교에 들면서는 번데기 학교입구에서 팔지도 않았지만 부근에 남중 여중이 섞여 있고 사춘기가 들면서 번데기 따위를 먹으면서 하교할 만큼 그런 강배짱은 못 되었고 서로 조신한 여중생으로 살아가기에도 무지 바쁘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근 바닷가 관광지에 가서는 옛날의 그 번데기 장수를 그곳에서 만났다 물론 얼굴이야 알 수는 없지만 리어카 모양에 커다란 곰 솥 안에는 번데기가 김을 뿜어내며 그 시절의 향수를 풍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어린 시절처럼 선뜻 번데기를 사서 먹고 싶었지만 그럴 나이가 아니라서 그냥 집으로 왔다
그래도 갑자기 기억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 시절의 번기데가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번데기를 샀고 이전에 본 것처럼 그리고 다른 요리들을 응용해서 번데기를 요리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번데기가 도착하고 보니 그 기억 속의 번데기가 아니라 애벌레의 움츠린 모양이라는 것을 그것도 어마한 양으로 각인되고 나니 선뜻 번데기에 손이 나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의 그 맛있고 적당히 부족했던 양의 번데기나 나이가 한참 들고 난 뒤 지금의 번데기가 전혀 다들 바가 없을 텐데 이제야 그게 누에의 애벌레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다니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애벌레의 모습이고 이걸 내가 먹으려고 샀다는데 손이 선뜻 먹기 위해 가지 않았다
추억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가
새들과 나눠먹어야 하나 그래도 이왕샀으니 냉동실로 넣어두고 더 생각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늘 땡초를 넣어 볶다가 푹 삼으니 예전의 냄새가 올라오고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다 그런데 막상 예전의 그런 기분으로 먹을 맛은 아니라서 다시 먹기를 중단하고 냉동실로 직행했다
아직은 판단을 보류해야 했다 먹을 것인가 새에게 줄 것인가 추억 속의 먹거리도 때로는 다른 얼굴이 되어 다가오니 정말 대략난감이다 아무도 없다면 주위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면 과감하게 새에게 줘 버리겠지만 그렇게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사놓고는 순식간에 마음이 싹 바뀌는 이 행태는 나도 이해가 잘 안되는데 앞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 살짝 눈치를 보게 된다
냉동실 문을 열 때마다 번데기가 눈앞에 보인다 그럴 때마다 왜 그날의 추억 속 번데기는 지금의 번데기가 아닐까 왜 이번데기는 그 번데기가 아닐까 왜 아닐까 계속해서 내 마음을 두드리는 번데기의 행태가 싫어질 즈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린 행동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