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동래읍성 근처 살던
홀어머니와 아이 길에서
동래부사의 긴 행렬을 보고
신분차별에 마음 쓰레하더니
죽어 재상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
동래부사로 부임하러 오는 길
생일 꿈속이면 잘 차려진 제삿밥 먹던 집
지나려다 망설이지 않고 문 열고 들어서니
호호 할머니 아질아질 섧게 울어
단박 전생 어미인 줄 깨닫고
마음으로 섬기며 효도한 유심
동래부사 유심은 신분차별로 죽은 아이가 재상집 아이로 환생하여 동래부사로 부임한 자이다 부임길에 전생의 어미를 만나고 이후 효도를 했다고 전한다 유심은 조선후기의 실존 인물로 선정을 베풀어 유심선정비柳淰善政碑가 동래읍성서문 입구에 있었으나 지금은 동해구청 뒤 근처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식당을 찾다가 이 골목 저 골목을 걷다 보면 무심코 만나는 유심의 선정비를 보면서 이 전생담이 진짜인지 여부는 알턱이 없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아이의 식견에도 너무 차이가 나는 신분 계급이 존재하던 시대적 상황을 죽음으로 극복하고 전생과 현생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을 생각할 수 있고 현생에 양반 가문에 태어나 동래부사를 하게 되어 전생의 한을 풀어내는 점은 어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전생 환생은 그리스 철학이나 영지주의 힌두교 불교 등에서 환생윤화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환생이나 윤회를 언급하는 각종 종교에서 각기 다른 과정을 거쳐 환생에 이른다 힌두교에서는 해탈하지 못한 영혼이 우주를 돌면서 윤회 환생한다고 믿으며 불교에서는 마음의 업이 다음 생의 몸을 만나는 단일로 환생하거나 열개의 영혼으로 쪼개지고 타인의 영혼과 다시 만나서 환생하는데, 전생의 기억은 사라지고 업보만 남는다
이런 이론적인 많은 내용들을 차치하고라도 가난한 어린 유심이 얼마나 상심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 상심으로 앓아누웠다가 죽어버린 점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어미 된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나는 신분차별을 요즘은 수저론으로 말들을 한다 이전에는 개천에서 용도 나고 신분을 뛰어넘는 만남도 갖고 사랑도 하는데 요즘은 정말 끼리끼리 살아간다 그렇다고 유심처럼 죽어 환생하여 부사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찌 세상을 살아가야 잘 살았다고 할지 추월해야 할지 초월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생은 글렀으니 라는 말이 유심의 경우를 보면서 생각난다 현 상황들에 대한 몸부림의 결과를 다 알고 아주 힘을 내지 않고 살겠다는 포기의 의도가 담긴 말이다 다음 생이 어디 있을까? 충효를 중요시하는 유교문화와 운회를 빌어 전생을 운운히는 종교적인 내용을 부추기고 확신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유심처럼 다음 생은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만은 종교마다 사후가 다르니 이는 어쩌 풀까
그나마 우리들의 생은 경제가 한참 일어서는 세대에 속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그런 날들을 살았으며 그나마 죽도록 노력했고 그럼에도 다양한 이유로 여전히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이는 살아가는 빈곤한 현실에 충만한 삶들은 곳곳의 사람 관계 속에서 본다
요즘 세대는 태어나면서 수저가 정해지고 그 수저는 바뀌기 쉽지 않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길은 사라지고 기껏해야 복권으로 용이 태어난다 한때는 서민 갑부라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름 희망의 주는 용도는 방영되었지만 여러 이유로 사라졌다
잘 살기 누구보다 잘 살기가 아니라 그냥 잘 살기 그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마음의 동요가 생기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상위 0.83%에 속하는 사람들이 해당되는 금융자산 10억 이상을 소유한 객관적인 부자인 자 혹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로운 자리에서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자 사람들은 다양한 수식어를 앞에 붙여 부자를 표방하기도 한다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는 하비슈머 HobbySumer 취미 hobby와 소비자 consumer를 합성한 조어이다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즐기는 취미부자도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속도로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고 노후부족 고령화 등으로 행복지수가 중 하위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라는 경재 구조 속에서 시대적인 흐름을 놓쳤다면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경제적 상황이 더 이상 바뀌기 쉽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급격한 노령화 속에서 연애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여기에 인간관계 집을 포기한 오포세대 꿈 희망을 더 포기한 칠포세대 포기할 것들의 수가 정해지지 않은 무한대에 이르는 N포세대 노후에 대한 준비부족이 취약한 나라 자녀와 부모에 물질적 정신적 여력을 쏟아 자신들에게는 남은 것이 없는 낀 세대 등등 암울하기만 한 세대 들 간에서 쏟아지는 불안감은 행복지수를 더 낮춘다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론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생존자체에 대한 별문제가 없을 것이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도 계산이 복잡할 뿐 생존에 대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삶의 지속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걸음을 살얼음판 같은 현실을 현명하게 내디뎌야 한다
노후에 얼마가 있어야 한다는 번르르한 노후에 관한 기사는 남의 일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귀촌도 자연이 되는 것도 답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법륜스님은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사회 보장이 되어 있어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잘 마음먹는 것 그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정말 답은 어디에 있을까 소통하고 조화롭고 지혜롭게 살아간다 치더라도 그것으로 답이 될 수 있을까 움직일 수 있는 동안 어떤 경제 활동이든 하는 것 그 기회를 놓지 않는 것 그리고 찾아 나서는 것 더 나은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 것 가능한 한 삶의 규모 소비규모를 줄이는 것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뻔한 정답이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팍팍하지 않고 따뜻하고 평온하고 여유로운 봄날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잘 살아갈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