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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예찬

by 김지숙 작가의 집

매화찬



좀 오래 전의 글이다 계절도 맞지 않아 선뜻 올려도 될라나 싶지만 오래된 글들을 정리한다는 마음에서 올려 본다


겨울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봄이다. 겨울을 나던 갈대가 그 몸 아래에 초록불을 은근히 댕긴다. “이렇게 고운 초록 잎새들을” “이렇게 예쁜 꽃망울을.”, “이 귀여운 초록 초롱을, " "이렇게 예쁜 이끼 꽃들을 못 보고 지나칠 뻔했네.” 요즈음 이런 류의 말들을 달고 다닌다. 어디를 보나 지천으로 깔리기 시작한 초록,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빛깔과 모습이 모두 다르다.

계절이 바뀌면서 몸과 마음은 나른하다. 운동부족이라며, 베란다에 있는 운동기구들을 거실로 들여놓는 아군의 지원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나는 봄이 보고 싶다. 초록을 만나고 싶다. 아파트 정원과 베란다에 있는 깔린 초록, 캠퍼스의 초록으로 나는 만족되지 않다.

얼레지 군락지도 보고 싶고, 진달래꽃들 속에 파묻히고도 싶고, 운무를 품는 폭포수의 절경 앞에 감동도 해보고 싶고, 피어오는 봄 안개 아름다운 우포늪도 보고 싶고,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고 싶고 지리산 신선도 되고 싶다.

난 매화를 좋아한다. 물론 대체로 대부분의 식물들을 다 좋아라 하지만 특히 매화 연꽃 난초를 무척 좋아한다. 난초는 꽃보다는 잎이 만들어 내는 선을 좋아하고, 연도 꽃보다는 연잎 위에 고여 있는 물방울의 조화를 즐긴다. 하지만 매화는 꽃이 좋다.

물론 당돌한 가지의 휘돌림도 좋아한다. 매화의 카리스마는 다른 봄꽃이 가지는 화창함과 비교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갔던, 매화 마을의 정경이 눈앞에 아른댄다. 화명동 뒷길 일부 구간의 가로수가 매화나무다. 그래서 매화가 피는 계절은 가급적 그 구간을 애용한다.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결혼해서 오래 기다리던 첫 아이를 가진 것을 안 날 아침 그 해의 첫 매화를 화단에서 보았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 반가움은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매화는 내게 반가움의 매개물이다. “올해는 꼭 매화 분을 한번 키워 봐야지.” 하면서 매년 묘목을 사서 화분에 키워보지만 쉽지 않다.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내겐 더 매력적이다.

인생길은 빠르다. 긴 세월이 어느 틈에 후딱 지나갔다. 나이수만큼의 속도로 인생이 지나간다고는 하지만 내게 삶은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 열심히 사는 것도,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도 좋지만 난 정말 아름다운 모습들을 다 만나보고 지나가는 걸까? ‘봄이 오는 초록 들판, 강가’,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생각’, 조각난 꿈을 맞추는 가상한 늦깎이의 노력’, ‘성공자의 오블리제’, ‘가진 자의 배려’ 등등.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겪어보지 못한 아름다움 등이 그것이다.

한비자는 '눈은 100보 밖의 것을 보지만 코앞의 것은 보지 못한다.'라고 했다. 정말 코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이 작은 눈에 보이는 작은 아름다움조차도 자주 놓치고 때맞춰 잔잔한 눈길을 주며 기뻐하고 살아온 것일까?

과거의 어느 순간 옳다고 결정한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온 지금도 여전히 그 판단들은 옳은 걸까? 혼란스럽다. 열심히 달려온 길이 아닌 다른 길에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초록세상이 있지 않았을까? 한 길로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난 그것들을 모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모르고 지나온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짧지만 만나봤더라면 하는 뜨거운 생각이 든다.


지금껏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무슨 기쁨으로 살아왔는지, 무슨 목표로 살아왔는지. 그 이면에 나에 대한 배려는 조금이라도 있는 건지. 얼마만큼 나를 아끼고 생각한 것인지. 아득히 잊고 살아온 내 존재에 대한 초록 사랑을 찾아본다. 만나 보고 싶다. 내가 즐거운 그것들을... 지금 바로 만나고 싶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내 눈으로 내가 바라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그려둔 내 미래의 그림자만 바라보고 다니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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