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오늘 시』
파릉
겨울 들판에 도사리고 앉아
온몸으로 추위를 삼킨다
땅은 얼어도 얼지 못하는 마음으로
붉은 심장 하나 지킨다.
언 몸뚱이로
식지 않는 열기를 만드는
나는
어린 봄을 키우는,
등이 시린 어미다.
* 시금치의 다른 이름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남해에 갔었다가 한겨울 추운 들판에서 시퍼렇다 못해 붉게 멍든 시금치를 보면서였다 시금치는 겨울철 채소라서 얼었다 녹았다 하는데 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잎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시금치가 유난히 달다고 한다 시금치는 나물로도 장떡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시금치라는 이름은 赤根菜(치근차이)에서 온 말로 고려말 조선초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시금치는 파릉전수명(菠薐傳數名 파릉(菠薐) 파릉채 파릉초 파채 적근채라는 여러 이름들을 가진다 파릉은 페르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로 들어온 채소이다
“菠薐傳數名(파릉전수명) 시금치는 여러 이름이 전해지는데
其始出波羅(기시출파라) 그 시작은 페르시아에서 온 것이네
我國有俗稱(아국유속칭) 우리나라에도 부르던 이름이 있었는데
恐是赤根訛(공시적근와) 아마 ‘적근’이 그것인 듯싶네 “
-김창협 한시(漢詩)
남해는 섬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그런지 찬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고 바람도 유난히 많이 불었다 시금치는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촌부들은 둥기둥기 옷을 여러 겹 입고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시금치를 캐고 있었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는 결코 아니었다
그냥 있어도 추운 날씨에 시금치 밭 중간중간에 종이 박스를 던져 놓은 걸 보면 농협에 납품하는 품새 같았다 멀리서 지켜보면서 차를 몰고 지나갔다
겨울 들판을 지키는 시금치도 그 시금치를 캐는 촌부도 어쩔 수 없는 추운 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라서... 어미라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