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오늘 시』
초록벌레
오일장 해거름에 산 푸른 배추
김치 담글 요량으로 속을 가르니
이파리마다 똥이 소복하다
물 몇 바가지 퍼부으니
초록 똥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아무리 찾아도 배추벌레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뒤적이다 겨우 찾아낸
배춧잎을 꼭 빼닮은 초록 벌레 한 마리
배춧잎 몇 장 넣어 앞마당으로 돌려보냈다
생각해보면 나도 황천강 금린어처럼
차려진 연민의 푸른 밥상 무시로 잘 받아먹었다
오래전 발간된 사화집에 실린 시이다 특별히 어떤 날이어서가 아니라 한 번씩 구포장엘 갔었다 운동도 할 겸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장구경을 하노라면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특별히 살 것이 있지도 않으면서 구경꾼을 하나 더 보탠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날도 구포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구포장은 평소에도 큰 시장이고 사람이 많지만 장날이면 골목골목 장꾼들이 모여들어 구포역 일대는 팔려는 사람 사려는 사람들로 꽤 복잡하다
나의 경우, 기존의 구포장 큰길에는 잘 가지 않는다 거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힘 센 사람들 틈에 떠밀려 다니기 때문이다 서로 몸이 부딪치는 것도 싫고 구포장에서 쉬엄쉬엄 구경하려는 의도를 전혀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외각 지대만 천천히 돌면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한다
무엇을 사려는 의도가 없이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길 한 귀퉁이에서 노모가 쭈그리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서 축 처진 쌈배추를 싸게 떨이한다고 사가 달라고 애원을 했다 싱싱한 배추들이 널렸는데, 다 시든 배추 꼴을 보니 누가 살까 싶었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가니 좀 사달라는 것이다
나도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할머니 힘든데, 구포장에는 왜 나오세요 집이 근처예요? 어디서 오셨어요
하니 삼랑진에서 왔단다 기차 타고 장구경도할 겸 사람 구경도 하고 장 아니면 사람 보기 어렵고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장 핑계 삼아 나들이 나오는 거라고 오가는 차비나 하려고 자기 먹으려고 약도 안친 배추라면서 그냥 배추는 무거우니 쌈배추 열댓 포기 가지고 왔는데, 사람들이 잘 안 산다고 그것도 이제는 힘들어서 몇 번이나 더 오겠냐며 말 끝을 흐렸다 가까이서 보니 족히 구순의 나이는 넘어보인다
좌판에 두세 포기 얹어두고 싸게 가져가라니 사실 김치를 잘 담지 않은 터라 선뜻 사지 않으니 자꾸만 더 넣어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의 태도가 할머니 눈에는 흥정하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아 괜찮아요 더 넣지 않아도 됩니다 못 들고 가요'
살지 말지 결정도 못한 나의 말에 아랑곳 않고 쌈배추를 봉지에 집어 넣었다
큰돈을 내니 잔돈을 세면서 싸게 줄 테니 떨이로 다 가져가란다 안된 마음에 내가 그냥 몽땅 다 달라고 했다 할머니 얼굴에 희색이 돌더니 푸른 큰 비닐봉지에 아낌없이 쌈배추를 덥석 다 담는다 순간 나는 그 할머니 앉은자리 뒤에도 그렇게 많은 배추가 있다는 걸 몰랐다 어쩌겠는가 이미 말을 해 놓은 것을
할 수 없이 값을 지불하고 10개나 되는 쌈배추를 양손에 다섯 개씩 들고 더는 미련 없이 빠른 걸음으로 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오면서 몇 번을 쉬고 또 쉬면서 그 할머니 참 힘도 세네 이걸 구포 역에서 가져왔다고? 대단한데 구포 장에 와서 이렇게 양손에 무겁게 무엇을 산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잘한 일인지 아닌 지에 반성과 칭찬을 반복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배추를 갈무리하는데, 배추마다 안에서 벌레가 나왔다 약을 치지 않았다는 할머니 말이 참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