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양산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다 통도사 경내를 내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양산시민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아 자주 드나들었다 통도사 금강계단을 제일 좋아했다 부처님이 안 계신 그곳이 제일 맘이 편했다 그때만 해도 금강계단의 문은 열려 있었고 맨발로 드나들도록 허락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날만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대웅전 안에서 간절한 소원이 있어 백팔배를 하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금강계단이 있다는 말만 듣고 그곳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계단이 없어 어디가 금강계단이 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나 보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 속에 있는 계단이라 단정 짓고 금강계단의 모습을 혼자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의례공간. '불사리(佛舍利)를 모시고 부처님이 그곳에 상주하고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의례공간이다 금강이란 불교에서는 일체의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나의 무지함에 웃음이 나왔다
금강보계(金剛寶戒)에서 유래된 말이므로 금강과 같이 보배로운 계(戒)'란 의미로 반야(般若)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물리칠 것을 강조하며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으로 이를 성취될 수 있으며, 삼학 가운데 계율이 으뜸이므로, 계를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보존하는 데는 불사리를 봉안한 곳이 으뜸이라는 뜻에서 금강계단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그래서 적멸보궁이라고 쓰인 대웅전에 부처님이 없는 거였다
나는 내 의지가 아니라 소위 뺑뺑이 세대라 원치 않게 불교재단 중학교를 다녔다 처음 학교에 가면 아침마다 찬불가를 부르고 종교 시간에 부처님의 일생을 듣고 식사시간마다 부처님께 감사하는 인사를 하고 조례 종례 때마다 부처님 말씀을 전해 듣곤 했다
물론 우리 집안이 할머니 할머니 때부터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믿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교의 영향을 받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종교 시간은 너무 너무너무 재미가 없어 기절할 지경이었다 반감을 가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창 사춘기 시절에 억지로 하는 종교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주입식 교육 시절이다 보니 입만 벌려서 집어넣으면 들어간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싯다르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면서 그도 스스로 가출해서 종교에 입문했는데, 왜 우리는 억지로 이 자리에 앉아서 그의 종교에 입문해야 하냐면서 주변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들이 종교의 자유가 없냐면서 떠드는 말에 비교적 온순했던 나도 오히려 불교에서 마음은 더 멀어졌다 3년을 그렇게 지나다 보니 자연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귀는 열려 있어서 이런저런 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문외한인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많이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양산에 살게 되었고, 단풍이 아름답고 내가 좋아하는 골산(뼈가 드러난 산)의 형태가 나의 콧대를 닮았다는 생각에 발길이 영축산으로 향했고 통도사에 자주 갔다 그렇다고 등록하여 교리를 공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왔다가 그냥 갔다 나는 언제나 내가 어떤 종교를 믿든 모든 시작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내가 무얼 믿는지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나부터 마음 챙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누구의 권유나 강요에 의한 종교활동만큼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의 진절머리 나는 종교시 간이 준 가르침이었으리라
통도사에 가면 나는 제일 먼저 적멸보궁에 가서 백팔배를 한다. 통도사라는 큰집에 사시는 부처님이라는 큰 어른에게 그의 집에 왔으니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거다 그리고 안부를 여쭙고 절을 하고 내가 희망하는 것이 뭐고 고민하는 것이 뭐고 한참을 자문자답하고 앉았다가 답을 얻든 못 얻든 나온다 금강계단에 항상 먼저 가서는 단에 쌀을 한 두 봉지 올려놓는다 큰 어른을 뵈면서 빈손으로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밥상에 밥 한 그릇은 올려놓는 성의는 보이고 싶었다 또 내가 점심공양 시간에 통도사 밥을 무시로 축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통도사의 공밥을 절대로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봄이면 홍매화가 피고 꽃사과 꽃이 피고 금목서 은목서가 한창이다 조금 절에서 벗어나면 야생초가 곳곳에 피어 있다 특히 서운암에서 자주 들러 물을 한병 갸져 와서 차를 끓여 마시곤 했다 차맛이 다를 것 같아서.
혼자서 이렇게 넓은 땅을 헤매고 다녀도 안전한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매화를 보고 통도사 계곡에 앉아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공양시간이 되면 공양을 하고 통도사의 구석구석을 봄나물을 캐러 다니곤 했다 그런 시기에 쓴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