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봄』
집
그런 집이 그리웠다
무화과 앵도 딸기 감나무
철마다 다른 꽃이 피고
열매 달린 나무들이 가득한 집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집
백합꽃이 마당 한켠 피고
채송화가 축담 아래 자리 잡고
과꽃이 형형색색 얼굴을 내밀고
국화향이 가득 피는 집
파초잎이 늘어진 마당은
여름 그늘은 언제나 더 길었다
마음이 머물고
풀꽃들이 마당 가득 자리잡은
그런 집에서 다시 한번 살고 싶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언제 가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언제가도 나를 기다리는 곳 잠시 누워도 온갖 평온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곳. 그런 곳이 집이다 마음이 튼튼히 자리잡은 곳 마음이 자라는 곳 그런 곳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방마다 들여다 봐도 여전히 추억 속의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생각나는 집 웃음소리가 생생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여전히 집안을 쩡쩡 울리는 그런 집 천둥과 비바람이 불어도 문이란 문을 꼭 닫고 이불 밑에 들어가서 비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던 밤이 길었던 집
싸늘한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따뜻한 불빛을 비추어 밤길이 무섭지 않았던 골목초입 첫집. 밥때가 되면 정갈한 음식들이 밥상 위에 놓이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뛰놀다가 배가 고프면 멀리서 밥먹자고 이름 부르는 소리에 단숨에 집으로 달려와가 두레상에 둘러 앉으면 식구들의 함빡 웃음들이 끊이지 않던 곳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식구들의 흔적들이 어느날은 특별히 생각난다 따뜻한 그 집은 조용히 문이 열리고 조용히 문이 닫혔다 부드럽고 깊은 그리움처럼 스르륵 스르륵 여닫이 문들이 많았던 그 집을 조용히 흔들던 문소리들은 이제는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 집을 짓고 다시 그곳에 살고 싶다
다시 그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그곳에 덩그라니 살더라도 그 때의 사람들은 다시 올 수 없고 그 때의 시간들이 찾아올 수도 그 때의 꽃들이 다시 피지도 않고 그런 나날들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그 시간들이 만들었던 평온과 편안함을 다시 부르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참새 멧새 까치떼가 날아왔다 날아가는 담벼락 커다란 나무들을 심고 지나는 구름도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가는 기왓장 얹은 멀리 초등학교 담벼락이 보이는 집 겨울이면 유리창에 성에꽃이 피고 기왓장 끄트머리에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깔끔ㅎ게 똑똑 따서 장난도 치고 엄마 몰래 설탕에 찍어 먹어보기도 하던 그 철없는 때가 언제든 열리는 그 집. 그리운 그집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다시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