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봄』
기차
깊은 밤에도
요즘 기차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예전에 기차는 '나 왔노라'며
큰소리로 알렸지만 요즘 기차들은
소리 소문 없이 다녀간다
비행기에 기가 눌리고
자가용에 허세를 환불하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소나기 속에서도 눈 비 속에서도
홀로 떠나고 홀로 맞는
간이역 코스모스처럼
침묵으로 도착하고 침묵 속으로 떠난다
요즘 사람들은
기차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도 예전만큼 풍경을 보지 않는다
낯익은 풍경도 낯선 풍경도
이제는 더 이상 풍경이 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멀리 기찻길이 보이는 주택가에 살았다 기차가 하루에 한두 번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기차소리를 흉내 내며 놀곤 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 기차에서 떨어진 하얀 돌멩이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기차는 철이 들면서 낭만과도 연결되었다
대학을 들어가고 주로 기차여행을 했다 친구들과 김밥을 사가지고 나들이 가면서 동해남부선 기차 여행을 별 목적도 없이 했고 바닷가를 지나는 기차를 타면 멀미도 하지 않고 그냥 좋았다 수다를 떨고 김밥을 먹고 이야기를 수도 없이 나누곤 했다
결혼을 하고는 기차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자동차가 거의 일상을 지배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삼십년 이상을 운전을 하다보니 자연 기차를 탈 일은 줄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타려고 해야 겨우 한두 번 지금껏 기차를 탄 것은 전철을 제하고 나면 20대 후반 이후 열손가락 안쪽이 될지 모른다 기차를 타고 내리면 항상 어디론가 멀리 갈 것 같은 설렘이 있다
코스모스가 한창인 역사들을 지날 때면 참 평화롭다는 생각들도 했다 일없이 물금역 삼랑진역을 기차로 간 적이 있다 물론 매화기행이라고 해서 이름은 멋지게 붙이긴 했다 사실 자동차로 가면 훨씬 편리하고 편안하기 대문에 일부러 기차여행을 하지 않지만 물금이나 삼랑진 정도는 편하게 타고 다니곤 한다
기차를 타고 가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과 느낌이 매우 다르다 오래된 길을 가는 느낌이다 개발되지 않은 모습들이 기차 안에서 볼 수 있고 변하지 않은 그대로 삭아가는 자연스러운 얼굴을 보는 것이 기차를 타는 묘미이다
기차는 가장 가볍게 가장 가까이 떠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여행 기분을 내민 여행은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내게 된다 이름 없는 묘지도 낯선 숲도 가난한 집 담장도 서슴없이 보게 되는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일렬로 나열하여 보여주는 사열식 같다
예전에는 기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쫓아가고 손을 흔들고 했는데, 요즘은 개 소 보듯이 맹숭맹숭하다 너무 발리 지나가거나 다른 볼거리가 너무 많아 눈을 돌리지 않는다 변심한 애인의 눈처럼 기차를 바라본다고나 할까
암튼 기차가 떠나면 왠지 낯선 땅에 홀로 남는 작은 불안도 느끼곤 한다 홀로 조금 먼 곳까지 기차 여행을 떠나는 것은 삶의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날이 따뜻해지고 대도시도 간다면 마음 맞는 친구와 기차여행을 자주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