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비누



오래 묵을수록

비누가 없으면 난감하다

물과 공기를 만나면 제 몸 녹여

부드러운 기포 속에 스며 든 시간

손 안에서 미끌어져 나가며

이름과 허물과 추억을 데려간다


온몸에 휘감겨서

미끄러질 듯 부드럽게 녹여내는

벗기고 싶은 기억들

더러움이 깊을수록 더 깊이 들어가서

온몸으로 껴안아 힘껏 밀어내는

온순하고 충성스런 인내심


대중온천 여기저기 누워 있는

대충 쓰고 버린 비누들이

아쉬운 손길을 기다리며

그 마음 서서히 녹아 사라진다




생활과 관련된 일상 속에서 시의 제재와 주제를 이끌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다만 그들을 시화하는 데까지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주로 지극히 평범한 소재들에 깊은 사유를 더한 시를 쓰기를 즐긴다 시와 시를 쓰게 된 동기 시에 못다 담아낸 생각들을 풀어내는 시각으로 시를 쓰고 나서 해설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물을 시간을 두고 관찰하고 오랜 시간 머릿속에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가진 난데없는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훅 들어온다 새로운 묘사를 즐겨 쓸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묘사를 할 수 없어도 새로운 시각이면 충분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면 그래도 족하다 이를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왔기에 일상시 사물의 이름을 시의 제목으로 기져와서 사물시 등으로 이름지어 말하기도 한다 주로 그렇게 시를 써 왔다

예를 들어 위의 시「비누」 같은 경우, 아주 작은 비누 조각이 내 몸에 닿기까지 어떤 경로를 거쳐 내게 이르렀는지를 생각하고 그 비누가 하는 역할이나 의무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주로 대상인 비누의 입장이 되어보면 쉽게 그 마음이 이해된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주체가 되어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그 사물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열리고 새로운 의미와 신선한 기운이 다가와서는 영감을 불러오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탄생시키는 시를 낳게 된다

우리는 사물을 도구삼아 살아가지만 때로는 우리가 그 사물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사물이지만 알아들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하면 된다 끊임없이 사물과 대화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가 탄생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시를 쓴다 물론 다른 시들을 쓸 대는 다른 방법으로 쓴다 하지만 일상적인 소재나 사물을 바라볼 때 만큼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와 관련된 시를 쓸 때에는 비누에 대한 생각을 오래하고 비누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을 채집한다 그러다보면 비누의 어원은 두 가지 정도로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서양의 사포 sapo라는 언덕에서 신에게 바치는 양을 구울 때 흘러내린 기름이 강가에 흘러들면서 강에서 빨래하던 여인의 때가 묵은 발레감에 흘러들어 때가 훨씬 잘 빠졌다는데 사 시작된 하나의 설과 중국 비조肥早에 어원을 둔다 비肥는 돼지비계를 조早는 하인 남자종을 뜻하는데 비조肥早를 비누로 읽었던 게 아닐까 라는 어원설이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비누는 이런 어원으로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로 탄생되었다는 정보를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비누가 한층 내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제는 남같지 여기지 않고 여기저기 버려진 비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된다 비누가 만들어진 원리를 알게 되면 더 좋다 하지만 비누가 이용되는 마음만 알아도 시를 쓸 수가 있다 하나의 마음만 잡아도 시를 쓸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비누는 말없이 상대가 원하는 일을 해내는 충성스러운 점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쓰고 버리는 마음들에 비누는 상처입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대중온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비누를 본다 위의 시에는 그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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