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강달강

by 김지숙 작가의 집


왈강달강



약속하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

전철문이 열리면

내리고 타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

아무리 바라봐도

똑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다


넓어야 두 뼘 남짓,

각각 다른 신을 신고

그곳에다 제 삶의 무게를 온통 쓸어 담고

허급지급 살다 간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노포에서 하단까지 가는 동안 멍하니 전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때문이다

긴 거리를 가면서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발은 한결같이 달랐다 우리나라에 저렇게 많은 종류의 신발이 있었나 부산이 신발의 성지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정말 아니네 싶을 만큼 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제 발에 편하고 제 맘에 드는 신발을 찾아 신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신발 안에 자신의 삶을 담고 살아간다

신발은 늘 함께 살아가지만 한번 신고 길을 나서면 특별히 새신이라 발이 아프지 않으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얼마나 신발에 무심하게 살아가는지 한 번쯤 생각한다

신발이 깨끗한 사람 흙투성이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 등산화를 신은 사람 슬리퍼를 신은 사람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된다 아무리 낡아도 깨끗한 신발, 아무리 새신이라도 흙이 덕지덕지 붙어 더러운 신발, 그날따라 달리 눈 둘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전철 안에서 사람들의 신발을 보고 그 시람의 옷매무새와 얼굴을 슬쩍 바라보면서 그 긴 거리를 어느 틈에 달려왔다

왈강달강은 '작고 단단한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자꾸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를 말한다 나는 이 시의 제목을 굳이 '왈강달강'으로 정한 이유는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다양한 신발을 보면서 새로운 신발들이 타고 내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마치 처마 끝에 달린 풍경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제목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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