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다'의 탄생을 축하하며
도서관이 좋아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나는 봄이 올 무렵의 어느 날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일에 매여 살던 시절에는 게시판에 붙은 강연 공고나 동아리 모집이 거의 다 남의 일이었다. 그놈의 시간이 맞지 않으니! 그저 책이나 한 아름 대출해다가 야금야금 주전부리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균열을 메꾸면 그뿐.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이제 나는 자유의 몸.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 구두를 신은 사람. 공들여 도서관 앞 게시판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 순간 우주의 어디선가 작은 홀씨가 날아들었다. 서평 쓰기 모임이 시작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입 회원으로 등록을 하고, 첫 모임을 가졌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았지만, 선생님을 모시고 뭔가를 새로이 배우는 일은-게다가 업무상의 필요가 아니라 순전히 흥미와 호기심만으로 공부를 시작한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어색하고, 또 신기했다.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용적인 뭔가를 다루는 수업도 아니고, 전문 작가가 될 것도 아닐 텐데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모여들다니.
젊은 선생님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우셨다. 뭐가 어떻게 진행될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게 앉은 나의, 혹은 우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는 느낌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글을 써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이 든 제자들을 데리고 선생님은 천천히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주셨다. 처음 쓴 글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을 소개하는 글을 써 보라셨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수줍게 숙제를 내밀었다. 어떻게 쓰는 건지, 문장과 문단을 어떻게 만들고 잇고 나누는지 감각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첫 글을 내 안에서 끄집어낸 것이다.
발표를 하라고 하셨을 때의 긴장감이라니. 한글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서투른 마음으로 내 글을 읽고, 다른 사람의 낭독을 듣고, 선생님의 촌평을 들으며 두 번째 수업이 진행되었다. 선생님의 평가는 다정하고 부드럽고 간결했다. 무자비한 가지치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냉소 섞인 말씀에 상처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소심해졌던 마음은 자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후의 수업이 어쩐지 잘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도둑맞은 가난(박완서)>에서 시작한 여정은 가을이 깊어갈 무렵 <남아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로 끝을 맺었다. 열한 권의 책을 읽고, 얘기하고, 글을 쓰고, 퇴고를 하는 동안 열 명의 회원들은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두 시간의 강의가 끝나면 누가 붙잡기라도 할세라 인사 나누기 바쁘게 흩어져 간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착하고 예쁘고 마음 따뜻한 회원 한 분이 제안을 해 주셔서 우리는 여름이 되기 전에 따로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 회원이 아니었더라면 집단 내향성일 것 같은 우리들은 모이게 되었을까?
여름 방학은 모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읽고 생각한 것을 나누고 묻고 대답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더 그 일에 익숙해 있었던 것일까. 다시 만난 우리들은 덜 서투르고 더 정확해진 눈과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글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발전이 없는 나는 홀로 슬프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열 명의 회원들은 좋은 친구가 되어갔다. 최초 열 명 중 두 분의 교체가 있었지만, 자연스럽고 친밀하게 관계가 맺어졌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온도와 거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가깝다 생각하면 간섭과 상처로, 아니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장벽으로 관계는 얼마나 손상되기 쉬운지. 어쩌면 우리가 책과 글로 만나서일 지도 모른다. 책을 통하면서, 그 이야기와 인물과 사건을 통과하면서 서로가 어떤 결을 가진 존재인지를 알게 된 것일지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난다. 언어를 잃게 된 마을의 선생님이 칠판에 모국어로 쓴 마지막 인사. 그렇게 처절한 상황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우리의 마지막 수업도 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필 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오륙십 년을,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바쁘고 가차 없는 한국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서로 다른 일상을 사는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별다른 이익도 없는데 시간을 내서 모인다는 일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 것인지를.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모이는 일을 구체화했다. 모여서 무엇을 할지, 언제 어디에서 모일지를 이야기하면서 ‘이게 될까?’하는 의혹은 걷혀갔다.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 두 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공식적인 첫 모임이 있던 날, 이 겨울의 첫추위라고들 했지만, 우리가 모인 회의실은 따뜻하고 정다웠다.
‘책 그리다’ - 모임의 이름이다. 멋진 회원님의 제안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어 신기하고, 늘 바쁜데도 저녁에는 어디선가 또 다른 멋진 분들과 만나고(우리를 부럽게 하고!) 톡방에 멋진 자료를 올려주시는 귀한 회원님의 귀한 아이디어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리다’의 중의성이 모든 회원의 마음에 닿은 것일 게다. ‘대상을 표현하는 것’과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어떤 대상을 흠모하는 것’. 우리가 책과 글과 타인의 마음에 대해 갖는 태도로 이보다 적합한 어휘는 쉽지 않을 터. 우리는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표현해 볼 것이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 세상을 꿈꿀 것이다. 함께 모여서.
탈퇴 사유는 단 하나, ‘본인 사망’ 시에만 가능한 것으로 동의했다. 물론 액면 그대로의 해석은 곤란하겠지만, 첫 시작의 의욕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법이다.
12월이 주는 춥지만 부드러운 어떤 기운이 합세하여 우리의 첫걸음은 신나고 쾌활하다. 앞으로 어떤 즐거운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희망 없는 세상에서 작은 기대를 하나 갖게 되었다. 어떤 과정이 이어지든, 우리가 12월 첫날에 만나 함께 만들고자 했던 작은 세상은 모였던 이들의 마음에 기쁨으로 남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