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거, 다이어리나 사람이나 싼거는 티가 난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년을 준비하는 많은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내년의 아이템 중 하나인 '다이어리'가 있다. 올해에 숫자 하나를 더한 네 자리 수가 박힌 표지에 알록달록하거나, 평범한 색이 입혀지고 펼친 내지는 나름의 정갈함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숫자 하나 더한 다이어리를 하나씩 준비한다. 그러나 1년 동안 빼곡히 써본 기억이 없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면 드문 드문 빈 쪽수가 눈에 들어오고 5월이 지나면 한 달이 통째로 여백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그러다 또 문득 생각나면 꺼내보고 후회하는 그 다이어리.
지난 몇 년 동안 다이어리를 장만하지 않고 지났다. 딱히 메모할 만한 생활 패턴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작품을 구상하며 스토리를 엮다 보니 메모할 필요가 생겨 여기저기 정하지 않고 메모하다 보니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힘들고, 가방마다 다른 수첩이 들어있어 한 곳으로 모으는 것도 번거로워 이번에는 편하게 메모와 함께 막 쓰도 부담 없는 다이어리를 구하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다이어리 구경을 하다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중국사이트에서 노트 몇 권을 구입한 경험으로 예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닌 이것저것 꾸미지 않고 막 쓰려고 다이어리 하나를 싼 가격에 구입을 했다.
이 다이어리는 한국제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몇 년 전까지 즐겨 쓰던 양지다이어리와 비교하면 종이가 가볍다. 양지의 종이는 무게감이 있고 얇은 데다 방수처리가 되어있어 만년필의 잉크도 번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구입한 중국제품은 종이가 펄프의 느낌이 그대로 났다. 휴지를 압축해 놓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처음 펴는 순간부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양지는 종이질이 좋아 뭔가 함부로 메모하면 안 될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중국산은 막 적어도 부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라 막 들고 다니면서 막 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께감에 비해 가벼운 느낌도 그냥 써다가 버려도 괜찮겠다는 느낌이다. 또한 나는 다른 이쁘고 좋은 그리고 무게감 있는 다이어리크기의 수첩이나 노트들이 몇 개 있으니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나는 싸고 편하나 고급지지 않는 2025년 다이어리를 하나 장만했다.
그렇게 장만한 다이어리에 무엇을 적어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런데 12월 3일 이후의 한국상태가 급변하고 있으니 2025년 1월 1일부터 써나갈 다이어리가 기대된다. 그 싼 거, 편한 거에 싸고 고급지지 않은 우리 정치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고급스럽지 못한 내 문체와 고상하지 않은 내 생각이 그 싸고 가벼운 다이어리에 적힐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나의 2025년의 기록이 적어질 것을 생각하니 기대되는 한 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2024년 마지막 달의 드라마틱한 현실이 40년 전의 한국을 생각나게 해서 씁쓸하면서도 정겹다. 그리고 내가 떠나 있었던 공백을 확연히 느끼게 했던 1990년대 말의 한국도 기억나게 해서 그 다이어리에 적어가게 될 스토리가 기대된다.
오늘,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었단다.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글이 안 써지는 이유를 어수선한 시국이라는 핑계를 대어 본다.
탄핵이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황임을 모르는, 아니 군대를 움직인 사람을 두둔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1990년 걸프전쟁의 언저리에 있었던 나는 전쟁이 무서운 줄 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12월 3일, 한국의 군대가 서울로 움직였다. 군대가 움직였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이야기다. 훈련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군대이다. 그런 군대가 움직인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우리 세대는 이해하면 안 되는 일이다. 내 자식이 있는 군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내 자식이 살상에 가담하여 살인자가 된다는 말이다. 왜 내 자식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명령자를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도 총과 관련된 장난감을 사준 적이 없다. 심지어 장난감 칼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내 아들이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이번 사태는 이해를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생각해 보라.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계엄군이라는 살인 집단이 될 뻔 했던 상황을 자식없는 부모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자식이 없어서 애민정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생각하듯이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다. 앞으로 자식 없는 대통령은 뽑지 말아야 된다. 자식 없는 박근혜도 탄핵을 당하고, 이번에도 자식 없는 윤석열이 탄핵을 당했다.
내 생각이 너무 비약적이긴 하지만 나만의 생각임을 밝히며 마지막 문장을 적어본다.
자식 없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지 말자.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지 모르는 지도자는 국민을 어떻게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지 모른다. 물론 자식을 패는 정치지도자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식이 어떤 의미라는 것은 안다.
추가로, 이 글이 자녀를 갖지 못한 부모를 험담하는 글은 아니다. 내 생각에 지도자 특히 대통령으로 가져야 할 조건 중 하나가 자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된 사람은 자식이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의 탄핵이 공교롭게도 자식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특히 이번에는 군대를 움직였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군대를 움직여서 정치하는 백성을 잡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다. 내가 살아있는 국가가 창피할 정도로 실망했고, 억울하다.
다이어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식없는 대통령으로 끝났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싼거는 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