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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Nov 12. 2023

"나이팅게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간호대생의 최대의 행사 나이팅게일선서식을 하는 제자들에게

간호사란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그 누구도 "나이팅게일"이라는 사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간호사를 꿈꾸는자는 거쳐야하는 직업 인생 중 가장 크고,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나이팅게일선서식은 간호사로써의 사명과 의무에 대한 선서을 하는 자리. 그래서 그 선서가 항상 직업 정신의 바탕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서식을 하던 기억은 가물해도 그 분위기는 항상 남아있다. 뭔가 굉장히 경건하고,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나를 기다리며, 이 선서를 어기게되면 무언가 큰 재앙이 나를 기다릴것 같은 그런 신비함도 함께 남아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냥 현실이고 생활이 되어 선서식의 엄중한 분위기는 현장의 빡빡한 일정과 스트레스에 묻혀버린다. 그렇게 우린 하나의 생활인으로, 보건의료인으로, 그리고 항상 실망하고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하나의 인간이 되어간다. '이런게 현실이야'를 반복하며 나를 합리화 시키고 사회화 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간호학 실습 시작전에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하고 임상실습에 임하여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그래서 일년 중 간호학과의 가장 큰 행사의 하나가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내 제자들에게도 찾아왔다. 2학년을 마치고 나면 3학년부터 실습을 하게되는 학제에 따라 선서식은 보통 2학년 학기 중에 한다. 20세기의 선서식은 그때의 간호복 양식에 따라 치마에 관을 썼다. 그래서 "가관식 및 선서식"이라고 칭하며, 그 식을 거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간호학생으로 임상실습에 임하게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간호복 양식은 활동성을 위해 바지로 바뀌면서 일명 간호사캡이라고 불리던 관이 없는 상태로 촛불을 들고(학교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다) 선서식을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형식의 변화는 있지만 간호의 정신에 대한 변화는 없기에 여전히 "나이팅게일"이 우위에 서서 우린 그녀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선서를 한다. 그렇게 간호사가 될 준비를 하게되는 것이다.

제11회 제주관광대 간호학과 "나이팅게일선서식" -뉴스N제주-


  한국 현실에서의 직업으로서의 간호사는 멋있지도 폼나지도 않는 현장직이다. 세월이 흘러 행정직으로 벗어나게되면 나름의 멋이 있을지는 몰라도 현장직에서의 멋은 현장을 지위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때 스스로가 멋나고 폼난다. 하지만 신졸로 막 입문한 액팅의 경우는 자신감의 하락과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회의로 매일을 보내야하는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그래, 전쟁터가 궁금하다면 주말 야간시간대의 대형병원 응급실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은 치열하다 못해 생명을 다루어야하는 내 손이 서툴어지면 베어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니, 내가 슈퍼우먼이 되어 이들을 모두 살려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생명이 계속 눈에 밟히는 생활전선이 된다. 그래서 전국의 성질나쁜 사람들은 다 모아 놓은 전시장이 되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다. 어디서 저런 성질머리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도 그 성질머리의 하나가 되어있는 것을 느낀다. 아~~ 우아한 직업은 이 세상에 정녕 없단 말인가!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지나 책임감이 생활이 되는 순간이 되면, 이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없어지는 5년차가 된다. 그 때부터는 안주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러 떠나게 된다. 그렇게 인생은 각자의 역활에 맞춰지면서 각자의 인생을 또 시작하게 된다. 제자들의 나이팅게일선서식을 계기로 나의 저 풋풋한 시절의 선서식을 생각해 본다. 나는 그때의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인생을 살고있나? 아니면 또다른 나의 인생을 내가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의 "나이팅게일 선서"는 나의 가슴과 나의 손끝에서 실현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반성해본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시행한 제자들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그들을 보는 나도 왠지 뿌듯하면서 과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오랫만에 느끼는 과거의 여행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이팅게일 이란 인물은 간호사와는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이름 자체가 간호사를 대신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간호사이기도 하지만 유명한 통계학자이기도 하다. 

그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 대해 위키백과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간략히 인용해본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orence Nightingale, 1820년 5월 12일 ~ 1910년 8월 13일)은 영국의 간호사, 작가, 통계학자이며 영국성공회의 성인이기도하여 성공회에서는 8월13일을 나이팅게일의 축일로 지키고 있다. 그녀는 크림전쟁 동안 간호사와 매니저로 일함으로써 간호학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윌리엄 에드워드 나이팅게일과 프랜시스 나이팅게일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름인 플로렌스는 여행가였던 부모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낳은 딸이기 때문에, 피렌체의 영어이름인 플로렌스라고 지었다.

  1849년 이집트 여행 도중에 알렉산드리아 병원을 참관하고, 정규 간호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었고, 부모와 이탈리아 여행중인 만난 스위스의 사회주의자 시스몽디의 영향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타임스신문에서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사를 읽은 뒤 자극받아 집안의 명예실추(당시 간호사는 미천한 직업군이었다)를 우려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카이저스베르트의 개신교 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1853년 런던 숙녀병원의 간호부장이 되었다. 크림전쟁(1853년~1856년)에 참여하여 38명의 영국 성공회 수녀들의 도움으로 스쿠타리의 야전 병원에서 초인간적인 활약을 보이는 간호사였고 유능한 행정가와 협상가였다. 그녀는 군관리들을 설득하여 병원에서 쓰는 물건들을 세심하게 조사했으며, 무질서한 병원에 규율을 세워 환자의 사망률은 42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1860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현재 킹스칼리지 런던의 일부)를 설립하고 간호전문서적을 저술하여 당시 천대받던 직업인 간호사를 전문직업으로 성숙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많은 병원 및 간호 시설의 창립 및 개선에 힘쓰고 남북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는 외국 정부의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70년 에드워드 7세로부터 여성 최초로 메리트 훈장을 받았으며, 국제 적십자 위원회에서는 '나이팅게일 상(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제정하여 매년 세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를 표창하고 있다.

저서 《간호를 위하여》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간호법과 간호사 양성의 기초 자료가 되고 있고, 이 외에도 《나이팅게일의 간호론》, 《나이팅게일, 간호사에게 전하는 글 : Florence Nightingale to Her Nurses》, 《나이팅게일》, 《바쁜 세상은 팔짱 낀 사람을 밀어낸다》 등을 저술하였다.

  한편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군의 전사자와 부상자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대부분의 사망자들이 부상 자체가 아닌 치료나 병원의 위생 상태에 의해 사망했음을 알아냈고,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에게 병원 위생의 개선을 설득하기 위하여 데이터를 그래프 형태로 나타내었다. 1858년 영국 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10년부터 차츰 기력이 약해져 병석에 누워있다가 8월 13일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이스트웰로에 매장되었으나, 묘비에는 'F.N. 1820년에서 1910년까지 생존'이라고 간략히 기재되었다. 이는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나이팅게일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1893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Harper병원 Farrana 간호학교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각 간호교육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약문이 통일되지 않아 사용중인 서약문을 수집 분석하여 서약문을 '선서' 로 하고 대한간호협회 대표자회의(1988.1.22.)에서 통일번역문안을 마련, 대한간호협회 제55회 정기대의원총회(1988.2.12.)에서 확정했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I solemnly pledge myself before God and in the presence of this assembly to pass my life in purity and to practice my profession faithfully.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I will abstain from whatever is deleterious and mischievous and will not take or knowingly administer any harmful drug.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I will do all in my power to elevate standard of my profession, and will hold in confidence all personal matters committed to my keeping, and all family affairs coming to my knowledge in the practice of my calling.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With loyalty will I endeavor to aid the physician in his work and devote myself to the welfare of those committed to my care.

 - 대한 병원 간호사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스승이자, 존경받는 인물인 나이팅게일에 대하여는 다른 비판들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간호사는 나이팅게일과 얽혀있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전세계의 간호사들과 나이팅게일 정신 하나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물이기도 한다. 이런 간호사로써의 나이팅게일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선서가 "나이팅게일 선서"이다. 또한 간호사로써의 직업인의 소명을 밝히는 공통된 선서이기도 하다. 우린 그렇게 "나이팅게일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직업인으로써 그리고 의료인으로써...

  내 제자들이 오늘을 항상 기억하는 직업인으로 남아서 일선의 현장에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살짝 가지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려 각자에게 어울리는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써의 직업인이 되길 빌어보면서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과 나의 직업인으로서의 삶도 돌아본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이라는 그물(?)에 스스로 걸어들어간 제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여 본다. 


  "애들아, 우린 이렇게 나이팅게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되는거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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