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설 때마다 아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첫 휴대폰은 폴더폰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 물건은 휴대폰이었다. 아이는 다음번 수학시험에 100점을 맞는다면 휴대폰을 갖게 해달라고 졸랐다. 스마트폰은 절대로 안 사줄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폴더폰이면 된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렬히 원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어찌나 휴대폰이 갖고 싶었는지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문제 하나하나를 꼼꼼히 다시 계산해서 100점을 받아왔다. 치사하게도 나는 다음번에 한번 더 100점을 맞아야만 휴대폰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순하고 착했던 내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번에 또 100점을 받았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참은 채로 억지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휴대폰을 개통해주었다. 가장자리에 금색 로고 장식이 있는 하얀색 폴더폰을 아이는 무척 아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반장이 카톡방을 만든다면서 전화번호를 적어내라고 했을 때 아이는 휴대폰이 없다면서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다는 게 부끄러워 서였다.
아이는 집에 와서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뒤늦게 다른 학부모를 통해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것이 상처가 된다는 걸 알고서 그제야 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아이는 자기 소유의 중저가 아이폰을 개통하고 날아갈 듯 기뻐했다. 짧은 생애에 단 한번 가져본 스마트폰을 아이는 소중하게 지니고 다녔다. 아이가 떠난 후에도 나는 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내 명의로 이전해두었지만 정작 단말기는 깊숙이 넣어둔 채로 거의 꺼내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아이가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니면 걸어갈 때나 수업시간에도 시시때때로 게임을 하지 않겠냐는 나의 우려에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아이는 하교할 때마다 출입구 현관에 있는 수신자부담 전화기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시겠느냐는 음성 안내가 나오면 나는 수신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하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하고 한 번 부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수업시간에 내준 숙제가 있었는지, 준비물이나 전달사항이 있는지 묻고 하루 동안 별일이 없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늘 수업은 잘 끝났고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르고 나면 나는 더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별다른 용건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성의 없이 집에 와서 더 얘기하자고 말했다.
아이는 한 번도 전화를 먼저 끊지 않았다. 항상 내가 ‘끊을게’하고 말한 후 먼저 전화를 끊었다. 십 분 후 집에 온 아이에게 전화를 왜 했냐고 물으면 아이는 그냥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고달픈 하루가 끝나고 자기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지 그저 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거였다. 그 마음을 그때 나는 몰랐다.
휴대폰을 갖고 등교하도록 허락해준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아이는 학교가 파하면 현관을 나서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은 별다른 용건이 없었고 가끔은 수행평가나 시험을 잘 봤다고 자랑을 했다. 걸어서 십 분이면 집에 오는데도 아이는 날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아이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그토록 나를 사랑하고 의지하던 아이가 스스로 떠나게 만든 이가 바로 나였다. 그 사실을 잊을 수도,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