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들처럼 Oct 24. 2021

21. 끝없는 후회와 비탄의 바닷속을 헤매며

생명력이 넘치던 푸릇한 사내아이를 애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가 더는 곁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내게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의 웃는 얼굴과 체온과 살내음이 어떠했는지 상기한다. 

아이가 베란다를 타 넘어갔음을 기억하고,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 내 몸에는 열이 오르면서 땀이 솟는다. 고통이 전신을 훑고 나면 눈을 감고 검은 암흑을 쳐다본다. 탈진한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며 잠깐씩 현실을 잊어버렸다. 약속이 없는 날에도 남편이 나가는 기척에 귀를 곤두세우다가 서둘러 따라 나왔다. 빈집을 혼자 지킬 수는 없었다. 집에 혼자 남는다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아이는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었다. 

하얀 피부에 솜털이 보송했고 동그란 눈동자는 어여쁜 갈색이었다.  명주실처럼 고운 아이의속눈썹은 길고 끝이 바깥으로 휘어졌으며 눈빛은 깊었다. 나는 명주실처럼 고운 아이의 머리카락의 감촉을 손갈퀴로 느끼고 싶고 듬직하게 자란 몸을 안아보고 싶고 입 맞추고 싶다.     


지금 그 아이를 떠올리는 나에게 슬픔이 차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예전에 아이가 내 곁에 살아있을 때도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끔씩 무척 슬퍼지곤 했다. 

아무 일이 없어도 슬퍼졌던 이유가 이토록 짧은 인연과 끔찍하고도 돌연한 이별을 어렴풋이나마 예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표현이 풍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한때 우리는 정말로 순수하게 사랑했으며 서로가 전부였다는 사실이다.  

틈날 때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에게 스킨십을 많이 해주면 감정의 뇌가 발달한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였다. 아이와 한 침대에 누워서 등을 더듬다가 등뼈를 만져보고 엉덩이를 쓰다듬고 때로는 짓궂게 팔을 잡아당기거나 팔뚝을 꼭 잡아보았다. 아이의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확인하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이 아이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거라며 안도하곤 했다. 

나는 철없는 엄마였었다. 키 큰 소년이 되어서도 나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때때로 뿌리쳤다. 엄마와 손잡고 걷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엄하게 말했다. 그러다가도 한참 후 제풀에 허전해서 아이 손을 슬그머니 더듬어 쥐었다. 마음씨 착한 내 아이는 서운한 마음에 풀이 죽었다가도 선선히 손을 내주었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너의 친엄마는 아주 좋은 분인데 다른 곳에 있다고, 너를 무한정 사랑해주는 친엄마에게 가라고 놀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엄마가 내 친엄마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며 도리질을 했다. 

    

그 모든 일들이 이토록 참혹한 이별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을까.          

아이가 떠나버린 지금 나는 외롭고 막막한 심정으로 밤하늘을 본다. 

희미한 별이 한두 개 깜빡거리는 걸 발견하면 아이와 함께 보던 밤하늘의 별이 생각난다. 

사춘기 소년에게 자연은 대체로 따분한 것이었지만 나를 무척 사랑했던 아이는 나와 함께 별을 바라보고 길가에 핀 꽃을 쳐다보고 땅에 떨어진 것 중에서 상처 없이 깨끗한 꽃송이를 주워다가 내 손바닥에 얹어주었다. 

그 아이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아이와 함께 보았던 밤하늘을 보는 나에게는 그때와 변함없는 별도,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푸른 나뭇잎도 모든 것이 아프다. 가슴이 너무 아파오면 심장이 있는 부분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린다. 내 가슴에는 아이가 쏙 들어갈만한 구멍이 생겼고 그 안에 아이를 품은 후로 심장이 덜 아프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다른 세상에 있을 뿐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맛볼 때면 아이와 함께 보고 느낀다고 생각한다. 구멍 난 가슴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지만 여전히 나는 죄책감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때때로 나는 내 아이의 자아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인 나의 의지대로 조종되는 마리오네트 같던 내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어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아이는 눈을 치뜨고 '나는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를 타 넘어갔다.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아이의 자아가 신체를 움직였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한다. 

내 아이가 보고 이해한 세상이 엄마의 색안경에 의해 왜곡되고 편집된 것일지언정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자아와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기억하려고 한다. 진귀한 보석처럼 빛나던 내 아이의 특별하고도 짧았던 생을 애도하면서. 


이전 20화 20.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