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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17. 잔인한 학교 시스템

공부 노동과 입시지옥

아이는 기억력이 좋았다. 논리적 추론에도 문제가 없었다. 지능은 정상 범주였다. 

하지만 마음먹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인 처리속도가 떨어졌다.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교과목 학습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나는 아이와 함께 공부를 했다. 

매일 아침 EBS 라디오를 틀어놓고 영어회화를 듣고 대화문을 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집에서 문제집을 다 풀면 채점을 해주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시험기간 동안 공부를 봐줬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아이의 지필평가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학부모 상담을 갈 때마다 교사들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건드려서 다툰다고 말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학습능력이었다. 특히 수학을 잘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가 손가락을 빨거나 비닐을 씹어대더라도 성격이 특이하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창 시절 동안 열심히 공부한다면 학교생활에도 좋고 나중에 사회 적응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설학원에 맡기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직접 공부를 봐주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훗날 남편은 내가 아이의 공부에 집착했던 것 때문에 모든 걸 망쳤다고 비난했다. 아이를 잃은 후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죽을 때까지 용서 없이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의 경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특목고 입시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특목고의 특성과 입시전형, 시험과목 그리고 합격을 위해 필요한 내신성적 관리와 시험과목 준비를 위해 필요한 학원정보 등을 숙지해야 한다. 

특목고에 진학할만한 성적이 안되거나 불합격한 경우, 또는 대학입시를 위해 내신성적을 관리하기 유리하다거나 이과 성향이란 이유로 일반고를 선택한 이후에도 대학 수시전형을 위한 내신성적관리와 학생부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학교생활은 송곳 하나 꽂을 데가 없을 정도로 빡빡해진다.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아이의 일반고 진학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대학입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뛰어야 한다는데 앞으로 3년간 어느 엄마 못지않게 열심히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1학기에는 중간고사 6과목, 기말고사 8과목의 지필평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전과목 수시평가가 3회에 걸쳐 시행되며, 지필 평가와 수행 평가 결과를 종합하여 내신 성적이 매겨진다. 

이와 별도로 내신성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똑같은 구조로 시험시간과 문항수가 주어지는 전국 학력 모의평가를 학기마다 2회씩 치러야 한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 후 두 달 동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서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후 컴퓨터 동아리에 가입하고 경기 꿈의 대학 빅데이터 과정과 파이썬 프로그래밍 과정에 등록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전에 4년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기 때문에 이해가 빨랐고 또래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커다란 시련이자 난관은 수행평가였다. 

고등학교의 수시평가방식은 순발력이 떨어지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아이에게는 최악이었다. 내 아이는 종종 수업시간에 수시로 예고되는 수행평가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캐치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치러진다’는 선생님의 설명은 아이에게는 난해한 수수께끼였다. 

수행평가를 미리 집에서 준비하도록 도와주면서 나는 그 때문에 아이를 자주 몰아세웠다. 1년, 아니 한 학기만 고생하면 아이도 고교의 성적평가방식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무엇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30년 전과 달리 현재의 고등학교 과정은 지나치게 방대하고 난이도도 높았다. 

예를 들어 절대평가를 90점만 넘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쉽다는 수능 영어도 1등급을 받으려면 토익 800점 이상의 실력이 되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대학에 입학하고도 별도로 토익학원을 다니며 몇 년이나 공부해야 할 정도의 엄청난 난이도였다. 


고등학생이 되면 1학년 때부터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학력평가를 치러야 한다. 

국어는 80분에 45문항, 영어는 70분에 45문항, 수학은 100분에 30문항을 풀어야 한다. 

국어의 경우 한 문제를 푸는데 2분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거니와 문제와 지문, 보기의 길이가 길어서 국어 한 과목의 시험지 분량만 해도 15페이지가 넘어가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가 필수적이었다. 

아이의 지능지수는 정상 범주였지만 처리속도가 매우 취약했다. 나는 영어와 국어 기출문제를 아이와 함께 풀면서 경쟁을 유도했다. 아이는 엄마를 이겨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빠른 속도로 집중력을 유지하며 문제를 풀었다. 이 방식은 효과가 있어서 아이는 고교 첫 중간고사에서 영어, 수학, 통합과학, 한국사 4과목에서 3등급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수시평가의 난이도 역시 지필평가에 뒤지지 않았다. 

사회과목의 1차 수시평가는 거슬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고 우리 사회의 오멜라스의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17 문장 이상으로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수준 높은 소설을 읽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길고 조리 있게 서술할 수 있는 고1 학생이 얼마나 될까. 이는 일반고에 재학하는 평범한 학생들이 수없이 치러야 하는 수시평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전과목에 걸친 수행평가를 한 학기에 세 번씩 치르고 그 모든 것을 빈틈없이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소위 학생부 종합전형에 필수요건인 내신등급관리를 해낼 수 있었다. 


학생부 관리는 엄마와 아이가 한쪽 다리를 묶고 달리는 2인 3각 경기라는 수험서의 조언대로 나는 아이의 수시평가가 예고되면 일정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집에서 미리 답안지를 작성해보도록 시켰다. 

내용이 미흡하면 직접 첨삭을 해서 답안지를 만들어준 후 외우도록 시켰다. 

고교 입학 후 매일 아이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몇 시간씩 공부를 같이 했다. 그 방식으로 강행군하는 것은 점점 더 힘에 부쳤다. 겉보기에 의욕적으로 따라오던 내 아이는 더욱 지쳤던 것 같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었으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며 나 자신과 아이를 다그쳤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교생은 예비 고3이고 입시는 누구나 힘든 거라고 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대학입시에 성공할 경우 사회진출에 훨씬 더 유리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눈이 멀었다. 더 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가 보고 배우고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평범한 학생들이라면 여건이 되는 한에서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공부가 안된다면 장애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나는 내 아이가 장차 프로그래머로 취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학에 입학해서 전공 공부를 할 기회를 가지기를 원했다.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장애인 작업장에서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사회생활을 하는 상상을 할 때마다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예민한 사춘기 소년이었던 아이는 나보다 더 가혹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멘토링 시간에 만나본 대학생 형과 누나들처럼 이름난 대학에 진학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기를, 더는 친구들이 무시하지 않고 끼워주기를, 엄마에게 인정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아이가 삶에 대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꼈을지 나는 지금에 와서야 이해할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은 걱정을 미리 앞서서 했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참혹했다. 

아이가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나는 홀로 울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후회할 뿐이다. 

그 아이에게는 용서 없는 세상의 법칙과, 그에 순응하라고 가르쳤던 엄마라는 괴물은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너무 몰랐다. 

그 아이는 이미 모든 힘을 짜내어 달려왔었다. 거기서 더 달리라고, 삶이 그런 거라고, 앞으로도 평생 그럴 거라는 엄마의 말에, 내 아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는 아이에게 힘들다고 불평했지만 아이는 한 번도 나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지, 힘들다는 말조차 못 하도록 내가 그 아이에게 부모의 권력을 휘두르며 찍어 눌렀기 때문인지 이제는 영영 알 수가 없다.      

나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내 아이가 충동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이해한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것을 한없이 후회한다. 

하지만 이 같은 환경에서 어린 학생들이 매일 입시지옥을 겪고 있는 것은 아직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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