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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20.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

방황하는 청소년기

나는 죽어 마땅했다. 사랑하는 아이를 죽게 만든 악마가 바로 나였다. 

내 정신은 망가진채로 아이의 마지막 모습만을 무한반복 재생했다. 이것이  현실 일리  없다고, 나는 허깨비처럼 누군가가  잡아끄는 대로  끌려다녔다. 

내 탓이 아니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많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십칠 년간  아이를 품고 키웠던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죽어지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떠나버린 아이의 결기가 부러웠지만 늙고 우유부단한 나는 도저히 십일층에서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나는 끼니를 거르기도 했고 막대기로 내 몸을 때려보고 술을 마셔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지금의 나처럼 괴로워할까? 나에게는 마땅히 죽을 이유가 있다. 하나뿐인 자식이 내 잘못으로 자살했으니까. 자식을 제 손으로  죽게 하고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그들은 쉽게 납득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죽어서 편안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도대체 내 어린아이는  언제부터  죽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공부 노동에  짓눌려서일까. 자폐성 장애인으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워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게임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야단을 맞았던 그 순간의 충동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야단을 쳤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자살할 수 있다니.

나는 내게 닥친 엄청난 비극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아이는 나의 전부였다. 나는 그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고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둘만의 여행을 수없이 다녔고 서로 의지하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절대로 헤어질 리  없을 거라  믿었던 사랑하는 모자였는데. 그 단단한  천륜이 아이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감옥과도 같은 굴레가 되어버린 것일까.


길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알려준 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고 가르쳤던 이 세상이  싫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자폐성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싫었고 죽을힘을 다하여 장애를 극복하라는 엄마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떠나기 바로 전날 밤에도 아이는 내 침대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잠들었다. 그날 아침에는 진로수업 과제였던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를 썼다. 온라인 클래스로 7교시 수업을 받았고 떠나기 삼십여분 전에 영어 숙제를 제출했다. 그런 아이의 선택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피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쳐봐도 부정할 수가 없다. 엄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십일층 아래로 추락한 내 아이의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내 아이는 원칙에 따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좋아했고 위인들을 존경했다. 부모나 선생님이 가르치는 규율에 따르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다. 유치원 선생님이 떼를 쓰면 안된다고 가르치자 떼도 쓰지 않았다. 게으름은 악이고 노력만이 살길이라는 나의 말에도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타고나길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는 종종 지시사항을 잊어버리거나 수행과제를 해내지 못해서 종종 야단을 맞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자존감은 낮아질대로 낮아졌을 것이다. 


아이가 베란다를 타 넘어갔던  날 나는 온라인 클래스가 끝나기 전에  게임 관련  동영상을 보았다며 아이를 심하게 나무랐다. 아이가 나에게 화가 났는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현실들에 절망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게임 동영상을  보고 싶은  욕구를 통제하지 못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더는 아이에게 물어볼 수 없다. 앞으로 내가 죽는 순간까지 죄책감에 괴로워할 것임을 잘 안다.     

나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의 예후를 낫게 하기  위해서  십여 년을  바쳤다. 일분일초라도  내가 더 노력하면 나보다 오래 살아가야 할 아이의 삶의 질이  달라질 거라  믿었다. 

아이에게 삶이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끝없이 유보하고 희생하기만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장애인의 부모라는 내 처지를 비관했으며 때로는 아이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여리고 착한 아이의 마음도 타이어가 닳듯이 점점 지쳐갔나보았다.    

지금에야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갓 사고하기 시작했던 청소년에게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이었는지.     

아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중  한 분은 아이가 학교 생활이나 교우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옳음에 대한 의지’가 있으므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셨다. 

아이의 세상에는 흑과 백이 있을 뿐 회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융통성이 없었던 아이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보호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내 아이를 너무 몰랐다. 기질이 순하고 착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한순간에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청소년으로 자랐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결과 나는 끔찍한 엄마이자 더 이상은  엄마일 수도  없는, 자기 자식을 자살하게 만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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