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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Jan 27. 2024

득음 수행

산에 올라 득음하고 오는 아줌마의 하루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고 포근했다. 아이도 친정집에 가서 홀가분한 주말을 맞이했다.

마음 놓고 늦잠을 잤다. 8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여유롭게 사다 두었던 감태를 꺼내서 감태쌈말이를 만들어 먹었다. 아이가 없는 하루는 여백의 미로 가득하다. 라이스페이퍼에 감태를 올리고 야채와 버섯, 두부를 올려서 말아주고 소스에 찍어먹으면 정말 맛있다. 

소스는 호두와 곶감을 믹서에 갈고 시나몬, 소금, 아가베시럽, 올리브유를 넣고 뒤섞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호두 스프레드가 된다. 남편과 순식간에 감태쌈말이를 뚝딱 해치웠다. 

어찌나 신선하고 고소한 지 한 접시에 가득 담긴 정성에 만든 보람이 컸다. 


오늘도 아침을 먹고 뒷산으로 향했다. 기모가 있는 겨울용 등산 바지에 롱패딩을 꺼내 입고 목도리랑 장갑도 챙겨서 나왔다. 산을 조금 올라왔는데 더워서 목도리를 풀어헤치고 장갑도 벗었다. '이런 날이 맨발 걷기 하기 좋은 날이지!' 나는 늘 그랬듯이 벤치 앞에 서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흙을 밟으며 때로는 닭처럼 꽈꽈꽈꽈하며 걷고 때로는 고양이처럼 느릿느릿 우아하게 걸었다.

때로는 호랑이처럼 근엄하게 걷기도 했다. 산의 모든 길은 나의 멋진 워킹을 위한 런웨이가 되어주었다.


푸른 하늘 아래 청산이 굽어보이고 창공이 펼쳐진 곳은 득음 수행을 하기에 참 좋다. 

득음은 판소리를 하는 분들이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진실한 음을 얻어가는 일종의 수련이다. 국악인이 되기 위해서 꼭 거쳐가는 산공부 중에 하나이다. 나는 국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고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배운 자진모리장단과 휘모리장단 정도만 아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산에 올라와 매일 득음 수행을 한다. 내게 득음은 산에 와서 웃음을 내뱉고 웃음을 얻어가는 일이다. 득음 수행은 조신하고 얌전하게 적당히 웃는 정도로는 득음이 되지 않는다.

국악인처럼 배꼽 아래 단전에서부터 잠재되어 있던 웃음 소리들을 끌어올려 내뱉어야 한다.

득음은 우주를 진동시킬 만큼 강력하고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뱉는 일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웃을 일은 생각보다 정말 희귀하다. 우리는 언제나 적당히 웃는다. 적당히 웃는 것도 전혀 웃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득음은 산에 올라 탁 트인 곳에서 내 몸과 마음이 천지자연과 함께 공명 하며 진동한다는 신비함을 느끼는 일이다. 그저 웃는 차원을 넘어서 득음이 수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이를 등원시키고 혼자서 산을 타는 신선놀음을 하다 보니 일상에서 딱히 크게 웃을 일이 없지만 이렇게 산에서 득음 수행을 하고 나면 웃을 일이 저절로 생겨나고 온몸에 맑고 푸른 하늘의 기운이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았다. 산을 타며 이렇게 득음 수행을 하다 보니 하나의 철칙이 생겼다.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에서는 득음을 하며 감탄을 표현하게 되었다. 가끔 지나가던 등산객들을 마주치면 매우 뻘춤하고 부끄럽지만 지나가면 그만이다.

때때로 그런 나와 마주쳤던 등산객들은 같이 웃기도 했고 어떤 등산객들은 나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어떤 여자가 맨발로 혼자서 산에 올라와 배꼽 빠져라 웃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시 또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곤 했다.


뒷산은 산이 너무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호탕하게 득음 수행을 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없는 곳을 잘 찾아다니며 오늘도 득음을 했다. 득음 수행은 전을 부칠 때 필요한 뒤집개와도 같다. 까딱 잘못하면 까맣게 타버릴 인생을 단숨에 뒤집어 버린다. 

바삭바삭하고 맛깔난 인생에는 득음 뒤집개가 필요하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득음 수행을 통해서 인생의 뒤집개를 준비하여 맛깔난 인생을 부쳐먹었으면 좋겠다. 날마다 득음하는 끝내주는 인생을 살고 있다. 

"푸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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