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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Sep 23. 2024

요란한 시작

연재소설 : 러브코딩 1화 - 요란한 시작

보험회사 영업점 사무실, 보험 영업 월 마감일.

보험 설계사들이 꽁꽁 숨겨온 보험청약서를 경쟁적으로 토해낸다.

마감시간 여덟 시까지 청약 내용을 입력해야 되기 때문에 긴장감마저 흐른다. 

보험청약서에 적힌 내용을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여사원은 청약서와 모니터 화면을 연신 번갈아 보며 정신없이 키보드를 치고 있다.


여사원이 바라보는 모니터 화면. 

검은 바탕에 초록색 글자로 채워져 있고 

커서가 키보드 치는 소리와 함께 바삐 움직인다.

커서가 숫자가 적힌 필드로 옮겨가 ‘3’이 입력된다. 

키보드 치는 소리와 함께 해당화면 아래에 '입력 완료'라는 글자가 뜬다.

입력된 데이터는 단말기에 연결된 LAN 케이블을 타고 사무실의 통신 장비로 흘러간다.

그 통신 장비의 램프가 반짝인다.



메인프레임이 설치된 전산기계실.

네 명의 오퍼레이터가 일하고 있다.

영업점에서 올라온 데이터를 수신하는 통신 장비의 수많은 램프가 바쁘게 반짝인다.

그에 따라 메인프레임과 스토리지(저장장치) 장비의 램프도 반짝인다.

영업점의 데이터가 전산기계실로 쏟아져 들어와 저장된다.


마감 시간 여덟 시가 된다.

마감 데이터를 미쳐 다 입력하지 못한 영업점의 전화가 폭주한다.

영업점의 여사원과 오퍼레이터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결국 마감 시간이 30분 연장된다.


8시 40분.

시스템 콘솔에 표시되는 데이터 전송을 나타내는 수치가 줄어든다.

이를 지켜보던 오퍼레이터가 소리친다.

“온라인 시스템 다운 들어갑니다.”

이어서 10분 정도 지나자 오퍼레이터가 다시 소리친다.

“배치(batch) 작업 시작합니다!”


검은 콘솔 화면에 초록색의 영어 글자가 밑에서 위로 흐르듯 올라간다. 

분주한 전산 기계실을 배경으로 시간이 흐른다. 


디지털시계가 2시 37분을 가리키는 가운데 컴퓨터 콘솔에서 경고 신호음이 울린다. 

오퍼레이터가 콘솔 내용을 살펴본다. 

batch job 에러 메시지.

오퍼레이터는 파일첩을 뒤져서 에러가 난 job의 담당자를 찾는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어서 펼쳐진 파일첩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며 전화 버튼을 누른다.



중만의 침실, 어둠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잠을 자던 중만은 벨이 5번 정도 울린 후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여기 기계실인데요. 에러가 나서 전화를 드렸어요.”

중만이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 JOB 이름이 뭐죠?”

“예, PNBPSCRE의 세 번째 스텝에서 에러가 났어요.”

중만이 기계적으로 묻는다.

“에러 코드가 어떻게 돼요?”

“'에스 공 씨 사' 에러인데요.”

에러 코드 ‘S0C4’, 중만은 전문적인 용어로 다시 말한다.

“아, ‘공 차리 포’ 에러요.”

걸려도 참 지랄 같은 에러에 걸렸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중만, 결정을 내린다.

“지금 기계실로 갈게요.”

“그럼, 작업 홀드 시켜 놓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세요. 아, 참, 지금 몇 시죠?”

“지금 2시 40분 좀 넘었어요.”

“예, 수고하세요.”

어둠 속에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딸까닥’ 하고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만의 한숨 소리.



택시에서 내린 민수와 재희는 공항 출입구로 내달린다.

뒤이어 달려온 회색 봉고차에서 ‘백골단’이 내린다.

머리에 헬맷을 조여매고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악명 높은 경찰 체포조 – 백골단.

하나 같이 모두 경찰봉을 손에 쥐고 민수와 재희를 쫓아간다.


공항청사에 들어온 민수와 재희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서너 명의 백골단이 공항 출입구로 들어선다.

백골단을 본 현수가 재희에게 말한다.

“이러다 우리 둘 다 잡혀, 너라도 도망가.”

“아냐, 같이 가.”

“나보다 학점이 높은 너가 도망가는 것이 맞아.”

재희는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학점 이야기가 왜 나오니?”

민수가 다급하게 말한다.

“학사경고 맞고 학교에서 잘려 엄마에게 맞아 죽으나 백골단에 맞아 죽으나 매 한 가지야, 너라도 도망갈 수 있다면 그게 어디야?”

그 말을 들은 재희가 민수를 깊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민수야...”


민수와 재희가 탄 에스컬레이터가 2층에 다다른다.

“빨리 도망가, 나는 괜찮아.”

에스컬레이터에 내린 재희가 출국 게이트를 향해 내달린다.

민수는 다시 에스컬레이터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간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고 쫓아오는 백골단을 향해 현수가 소리치며 덮친다.

“다 덤벼!”

민수와 백골단이 엘리베이터에 넘어져 뒤엉킨다.

넘어진 백골단 단원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야, 이 새끼는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너는 저 년 잡아.”

백골단 한 단원이 일어서자 민수는 그 단원의 옷깃을 잡고 늘어진다.

민수에게 잡힌 백골단 단원이 경찰봉으로 민수를 내리친다.

그래도 안 놓는 민수.

서로가 뒤엉킨 채로 에스컬레이터가 2층에 다다른다.

민수는 출국장 쪽을 쳐다본다.

미리 와 있던 선영과 함께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재희.

그 뒤에 또 한 명의 남자가 뒤따라 들어간다.


“됐어!”

출국장에 들어서는 재희를 보며 민수가 소리친다.

재희를 놓쳐 화가 난 백골단 단원이 경찰봉으로 민수의 머리를 내리친다.

출국장으로 사라지는 재희를 바라보며 민수는 의식을 잃어간다.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민수야, 제발 좀 일어나라, 회사 늦겠다.”



꿈을 꾸며 자던 민수가 눈을 번쩍 뜬다.

평소와는 다른 방안 밝기. 환해도 너무 환하다.

민수를 화들짝 놀라며 시계를 본다.

8시 20분. 회사 출근시간 지각 경계선.

민수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서 화장실로 내달린다.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만 찍어 바른 현수, 

어제 벗어둔 옷을 급히 입고 급히 집을 나선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회사를 다니겠다는 것인지...”

민수의 어머니가 혀를 찬다.



큰 오피스 빌딩들에 늘어서 있는 인도, 

민수는 그 길을 뛰어가면서 손목시계를 본다.

시계가 정확하게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보폭을 넓히며 더 빠르게 뛰어가는 민수.


민수는 회사 입구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선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곧장 엘리베이터 탑승구 쪽으로 뛰어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탑승구가 민수를 더 조마조마하게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민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7층.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민수는 사무실 문을 열려다가 사무실 안을 들여다본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TV로 사내 조회 방송을 보고 있다. 

민수는 난감한 듯 잠시 망설이다가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간다.


사무실은 사내 방송 아나운서 멘트가 들리고 모든 사람이 천장에 달린 TV로 사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허리 굽혀 살금살금 들어오는 민수의 궁상맞은 모습.

소라는 출입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민수의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주눅 든 민수의 눈과 마주친다. 

소라는 '픽' 하고 웃고는 TV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민수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다시 한번 더 힐끗 쳐다본다.

허리를 약간 숙인 자세로 사무실 통로를 민망스럽게 급히 걷는 민수.

일섭은 사무실 통로를 걸어가는 민수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내뱉는다.

“저 송사리...”


한 밤 중에 기계실 호출을 받았던 중만, 그 와중에도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사내 방송 소리가 들리는 기획팀 회의실에 3명의 신입사원이 앉아 있다.

민수는 웅크린 자세로 회의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민수는 신입사원 동기들에게 속이 괜찮냐는 듯 배를 가리키며 그들을 바라본다.

동기들은 민수에게 대답하듯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내 방송 아나운서 멘트가 이어지다가 잠시 후 사내 방송 종료 시그널 음악이 들린다,


기획팀 직원이 문서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서자 신입사원들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모두 오셨어요? 어제 술들을 하셨군요. 지각도 다 하시고.”

신입사원들은 민수 때문에 술 먹은 것이 들켰다는 듯 일제히 민수를 쳐다본다.

민수는 죄지은 사람 마냥 기획팀 직원의 눈치를 살핀다.

“이것은 알아 두셔야 하는데, 조회 방송할 때는 밖에서 기다렸다가 방송이 끝나면 들어오세요.”

기획팀 직원이 민수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다른 분들 조회 방송 시청에 지장 있으니까요.”

“예.”

민수는 기획팀 직원의 눈길을 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제 말했듯이 오늘은 팀 배정이 있고요, 여러분들은 각 팀으로 배정될 것입니다.”

기획팀 직원은 가지고 온 문서를 든다.

“배정되는 팀을 불러 드릴게요.” 

신입사원들은 긴장하며 그를 주시한다.

“이민수 씨 신계약팀, 조남준 씨 융자지원팀, 박연형 씨 영업인사팀, 심규섭 씨 총무관리팀, 다들 아셨죠?”

“예,”

“3일 동안 기획팀 OJT를 받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각 팀으로 가셔서 본격적인 OJT를 받으며 업무에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배정받은 팀으로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자 짐들 챙기세요.”


신입사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획팀 직원을 따라서 회의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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