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수 Sep 26. 2024

신입사원 길들이기

연재소설 : 러브 코딩 4화 - 신입사원 길들이기

식당을 들어선 신계약팀 일행이 빈자리로 가서 앉자 종업원이 다가온다.

“4인분 하고 라면 사리 하나 주세요.”

중만이 종업원에게 주문한 뒤 일행들을 보면서 말한다.

“아침을 걸렀더니 좀 시장하네요.”

“이 식당이 참 오래됐어, 내가 10년 전에 입사했을 때부터 있던 집이야.”

일섭이 은근히 자신의 경력을 과시하자 중만이 맞장구친다.

“대리님 회사에 들어온 지 참 오래되었지요.”

“그때만 해도 전산을 상고에서만 가르쳤어, 그래봤자 전산 개념 수준이었지만... 그때 나는 4급 고졸 사원으로 정보시스템실에 왔지.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서인철 과장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왔고...”

“대리님이 과장 진급 빨리하셔야 될 텐데요.”

“아직, 2년은 더 채워야 해, 중만씨는 내년에 대리 진급 케이스지?”

“뭐 개나 소나 되는 대리인데요.”


중만은 자신이 한 말이 아차 싶어서 일섭대리를 힐끗 보고는 민망한 듯 웃는다.

식당 종업원이 부대찌개를 냄비째로 가져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는다.

신규는 라면 사리를 부대찌개에 넣으며 말한다.

“오늘 신문 광고를 보니까 20메가 바이트 짜리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달린 퍼스널 컴퓨터가 나왔더라고요.”

“용량이 굉장히 커졌네.”

중만의 말에 신규가 설명을 덧붙인다.

“예, 더군다나 컬러 모니터입니다.”

“가격이 어떻게 돼?”

일섭의 물음에 답하는 신규,

“150만 원요. 좀 비싸긴 하죠.”

“그래도 많이 내렸어. 얼마 전에는 PC 한 대가 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이었어.”

중만이 동의하듯 말한다.

“이제는 몇 달 치 월급만 모으면 PC를 살 수 있으니 많이 싸지긴 했죠.”


부대찌개가 끓자 각자 돌아가면서 부대찌개를 각자의 접시에 담는다.

민수도 부대찌개를 국자로 퍼서 접시에 담는다. 

팀원들은 밥을 조금 떠서 앞접시에 담긴 부대찌개와 버무려 천천히 식사한다.

민수는 머슴처럼 밥 한 숟가락에 부대찌개 한 숟가락씩 듬뿍 떠서 먹는다.

이내 민수의 공깃밥 그릇과 앞접시가 다 비워진다.

일행들이 식사하고 있는 와중에 식사를 다 마친 민수.

혼자서 멀뚱하게 앉아 있는 민수는 민망스럽다.

그런 민수를 본 중만은 카운터 쪽을 향해 소리친다.

“아줌마,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주세요.”


종업원이 공깃밥을 들고 와서 식탁 위에 놓는다.

중만이 민수 앞으로 공깃밥을 내민다.

“밥 한 그릇 더 해.”

“괜찮습니다.”

“그러면 반 그릇만 더 해. 나머지는 내가 먹을 테니.”

민수는 반그릇의 공깃밥을 떠서 자기 밥그릇에 담는다.

그리고는 팀원들처럼 밥을 찌개그릇에 담아 조금씩 비벼서 먹는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팀원들과 식사 속도를 맞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어왔지만 사무실은 아직 점심시간의 적막이 흐른다.

숨 가빴던 오전을 보낸 민수, 이제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그러나 민수는 책상에 멀뚱히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할 일 없는 민수는 책상의 빈 서랍을 차례대로 열어 본다. 별 것이 없다.

또다시 멀뚱히 앉아 있는 민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를 보고는 의자에 걸쳐 둔 양복 상의에서 수첩을 꺼낸다. 전화기에 적힌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는다.

수첩을 상의 주머니에 넣은 민수는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만만한 단말기 모니터에 멍하니 쳐다본다.

점심을 마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무실로 들어와서 민수의 뒤를 지나간다.

이번에는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민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따로 없다.


신규는 민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매뉴얼 있는 곳을 알려 드릴게요. 같이 가시죠.”

“예.”

살았다 싶은 민수는 일어나서 신규를 따라간다.



신규는 민수와 함께 캐비닛 앞에 선다. 2단으로 이루어진 캐비닛에서 위쪽 캐비닛 문에 열쇠를 꽂아서 문을 연다.

“이것이 우리 팀 캐비닛입니다.”

“예”

신규는 얼떨떨해하는 민수를 보며 설명을 시작한다.

“이것은 야간에 돌아가는 일일마감작업 매뉴얼, 그 옆이 낮에 돌아가는 온라인 시스템 매뉴얼, 그 외는 시스템 개발 매뉴얼들입니다.”

신규는 매뉴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이것은 우리 팀 데이터 파일에 대한 매뉴얼입니다. 우선은 할 일이 없으니 이것을 보면서 데이터 필드명을 익히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신규는 데이터 파일 매뉴얼을 뽑아서 민수에게 내민다.

민수는 매뉴얼을 건네받아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민수는 가지고 온 데이터 파일 매뉴얼을 펼쳐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본다.

민수는 눈치를 보며 손목의 살짝 비틀어서 손목시계를 본다, 2시 10분.

그리고 다시 매뉴얼을 본다. 시간이 흐른다. 다시 시계를 바라본다, 2시 55분. 

지나가던 연형이 민수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간다.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형의 뒤를 따라 사무실에서 나간다.



민수와 함께 비상계단으로 들어선 연형이 먼저 말한다.

“어때? 할 만해?”

“뭐, 일이 있어야 할 만하든지 말든지 하지.”

민수 말에 연형이 동의하듯 말한다.

“나도 그래, 시간도 안 가고 정말 힘드네.”

“데이터 파일 매뉴얼 보라는데. 미치겠다. 내가 그걸 봐서 어떻게 알아?”


남준이 커피를 들고 비상계단에 들어선다.

“동기들이 여기 다 모였네?”

커피까지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남준, 연형이 묻는다.

“너는 할만한가 보지?”

“문서철에 오래된 플로차트를 다시 그리고 있어.”

“오, 그래? 시간은 잘 가겠다.”

민수가 연형에게 묻는다.

“담배 있나? 급하게 나오느라 담배를 못 챙겨서.”

“담배 다 떨어졌어. 나는 너가 담배를 가지고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남준이 동기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네.”

남준의 말에 민수가 하소연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돌아버릴 것 같다, 시간도 안 가고.”

“고참들이 안 가르쳐 주나?”

“다들 바빠서 나한테 신경 쓸 틈도 없어.”

민수가 갑자기 톤을 낮추며 말한다.

“우리 팀 프로그램 에러가 나서 오전에 완전 비상!”

그 말에 남준은 주위를 살펴보고 톤을 낮춰 말한다.

“괜찮나? 담당자가 실장한테 박살은 안 났어?”

연형도 덩달아 톤을 낮춘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산실에서 에러가 나면 큰일 아닌가?”

“몰라, 팀장이 과장에게 보고는 하던데 깨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때 비상계단으로 직급이 있는 듯한 두 사람이 커피잔을 들고 함께 들어온다.

“음, 그렇지, 자동차 할부가 남아도 중고로 넘기는 데는 문제가 없지.”

민수를 포함한 동기 일행이 갑자기 말을 멈춘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사한다.

그중 한 사람이 민수 일행을 쳐다본다.

“오, 이번에 새로 온 신입사원들?”

“예...”

동기들과 함께 쭈뼛거리며 복도로 나가려 한다.

“하던 이야기 계속해. 불편해할 필요 없어.”

“방금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연형의 말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민수와 동기들은 그들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피한다. 


동기 일행은 비상계단 문밖으로 나와서 복도로 들어선다.

“너희는 신입사원 환영회를 언제 하나?”

남준의 말에 민수가 대답한다.

“내일 한다는데.”

“우리 팀은 아직 말이 없어.”

연형의 대답을 들은 남준이 뻐기듯 말한다.

“우리 팀은 오늘 하기로 했다.”

일행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민수는 자리에 앉아 이해할 수 없는 매뉴얼을 보고 있다. 

사실, 보고 있는 척하며 오늘 재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민수는 나오는 하품을 입 안에서 삼키며 고개를 든다. 

소라와 눈이 마주친다.

뜨끔한 민수는 얼른 눈을 내리깔며 매뉴얼로 눈길을 돌린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라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민수 자리로 다가온다.

“선생님, 졸리시죠? 껌 드세요.”

소라는 민수의 책상 위에 껌을 놓는다.

민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라를 올려다본다.

소라는 장난스럽게 민수를 내려다본다. 

옆에 앉은 중만이 소라를 반기며 말한다.

“아,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나도 졸려, 소라 씨 나는 껌 없어?”

중만의 말에 소라는 앙증맞고 매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없어요.”

중만은 돌아가는 소라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커피 한잔합시다.”


팀원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민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라를 쳐다보고는 팀원을 따라 나간다.

소라는 민수의 그런 표정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커피 자판기 앞에 선 팀원들.

신규는 동전통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을 커피 자판기에 밀어 넣는다.

중만이 웃으며 놀리듯이 말한다. 

“신입사원이 졸다니, 내가 신입사원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회사 참 많이 좋아졌어.”

민수는 고개를 돌리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일섭이 웃으면서 민수를 놀린다.

“정소라가 민수 씨를 점찍은 것 같은데, 민수 씨는 좋겠어.”

“아, 아닌데요.”

당황하는 민수가 재미있다는 듯 중만이 한마디 덧붙인다.

“민수 씨가 정소라에게 좋게 보였나 봐.”

애써 태연한 척하는 민수에게 중만이 묻는다.

“민수씨는 어떤 음식 좋아해? 내일 회식하러 가는데, 민수 씨, 어떤 식당이 좋아?”

“뭐든지 다 좋아합니다.”

신규에게 묻는다.

“거기 오복삼겹살집으로 갈까?”

“거기가 무난하죠.”

신규는 들고 온 동전통을 민수에게 건넨다.

“이제 민수 씨가 커피 동전 챙기세요.”

일섭이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업무 인수인계하는 거야? 축하해 민수 씨. 이제 전담 업무가 생겼네.” 

일섭이 말한 전담 업무라는 말에 일행은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민수는 동전 담은 명함통을 들고 일행을 뒤따라 간다.



민수는 매뉴얼을 보면서 소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한다.

지각 출근할 때 눈이 마주쳤던 일,

첫인사에서 악수를 무시당했던 일,

그리고 졸리지 않느냐고 망신 준 일,


이런 생각을 하던 민수가 고개를 든다.

문서를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소라와 민수의 눈이 마주친다.

소라는 민수의 눈길을 무시하며 문서를 책상 위에 놓고 자리에 앉는다.

민수는 소라를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매뉴얼로 눈길을 돌린다.


민수는 분을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껌을 들고 소라에게 다가간다. 민수는 소라의 책상 위에 그 껌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소라는 반가워하듯, 조금 큰 소리로 대답한다.

“어머! 고마워요!”


일을 하던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민수를 쳐다본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민수는 당황해서 쫓기듯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소라는 생긋이 웃으며 껌을 집어 들며 민수를 바라본다.

이전 03화 조직의 쓴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