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42화 - 해수욕장에서 노는 아이들
낮은 파도가 일렁이는 무릎 깊이의 얕은 바다.
현수는 인주와 한주가 탄 고무보트의 줄을 잡고 첨벙거리며 걸어간다. 혜진이 그 고무보트를 뒤에서 종종거리며 쫓아온다.
방향을 바꾸어 다시 반대편으로 가는 고무보트.
이번에는 혜진이 보트에 타고 인주와 한주가 고무보트 줄을 끌고 있다. 뒤따라가는 현수.
시간이 지나자 인주와 한주가 고무보트를 뒤집어서 놀고 있다. 뒤집힌 고무보트에 올라가려고 보트를 잡고 바둥당거리는 녀석들, 현수는 녀석들의 몸통을 잡고 보트 위로 올려준다. 뒤집힌 보트 위로 올라간 녀석들은 바닷물에 첨벙하며 뛰어든다. 그리고 또 뒤집힌 보트에 오르려고 바둥당거리고, 그때마다 현수는 녀석들을 보트 위로 다시 올려준다.
현수는 양팔로 혜진의 몸통을 잡고 공중 높이 던져준다. ‘풍덩’ 하면서 물속으로 던져진 혜진은 그때마다 일어나며 ‘아빠 또 해줘’ 하며 즐거워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간조를 따라 놀다 보니 어느새 현수네 텐트가 저 멀리 보인다.
햇살로 얼굴이 발개진 아이들에게 현수가 묻는다.
“배 안 고파?”
“조금 고파.”
“라면 끓여줄까?”
“응.”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녀석들, 배가 고프긴 고팠나 보다.
물이 빠져 넓게 펼쳐진 갯벌 모래사장, 뛰어가는 아이들을 따라 현수는 고무보트의 줄을 잡아끌며 간다.
텐트 안에 휴대용 가스버너 케이스가 밥상처럼 뒤집혀서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식기를 놓고 라면은 먹는 아이들.
현수는 텐트 밖에서 추가로 끓인 라면을 텐트 안으로 들고 들어온다.
“혜진이 라면 더 먹을래?”
“응.”
“아빠, 나도.”
현수는 아이들 식기에 라면 사리를 조금씩 더 얹어 준다. 그리고 코펠 채로 들고 라면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묻는다.
“맛있어?”
“아빠, 짱으로 맛있어.”
물놀이로 지친 아이들, 라면이 맛없을 리 없다. 현수는 열심히 먹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배고프면 닭꼬치 사 먹으러 갈까?”
“응.”
식사를 마친 현수는 자동차에서 캠코더를 가져온다. 그리고 텐트 안에 있는 녀석들을 향해 소리친다.
“아빠 왔어, 이제 나와.”
텐트 안에서 혜진이 조그마한 튜브를 가지고 나오고 뒤이어 커다란 플라스틱 장난감 삽을 하나씩 든 인주와 한주가 나온다.
“아빠, 물건들 여기 그냥 놔두고 가면 안 잃어버려?”
혜진의 말에 현수가 호기롭게 한다.
“인주하고 한주도 잃어버릴 뻔했는데, 물건쯤이야 잃어버려도 괜찮아.”
미심쩍은 혜진은 텐트 안을 한번 흩어본다.
오후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며 바다로 가는 현수와 아이들.
혜진은 밀물로 저 멀리 멀어져 간 바닷물에서 작은 튜브를 안고 수영하고 있다.
전신수영복을 입은 인주와 한주는 큰 장난감 삽으로 모래 구덩이를 파며 놀고 있다. 모래를 파낸 웅덩이에 앉아서 깊이를 가늠한 후 다시 모래를 퍼내는 인주와 한주. 퍼낸 모래로 웅덩이 주위로 둑을 쌓고 있다.
아무 재미도 없어 보이는 모래성 쌓기에 한주가 더 열심이다. 역시 단순한 한주.
현수는 모래 웅덩이를 파면서 노는 인주와 한주를 캠코더로 찍어준다. 그리고 틈틈이 저 멀리 수영하는 혜진을 캠코더 줌 렌즈로 당겨서 살펴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 멀리 보이던 물결이 밀물을 따라 아이들이 노는 모래 웅덩이 바로 앞까지 와있다. 잔잔하게 치는 파도가 아이들이 쌓아놓은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아이들은 놀이에 지쳤는지 무너지는 모래성을 그냥 바라만 본다.
밀물을 따라 어느덧 가까이 온 혜진, 늦은 오후 햇살을 마주 보며 밀려오는 낮은 파도를 두 발로 깡총하며 뛰어넘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에 맞추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혜진, 현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다.
혜진이 현수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아빠, 조금 전에 어떤 여자애가 나에게 욕했어. 그래서 나도 욕해줬어.”
현수가 궁금한 듯 혜진에게 묻는다.
“어떻게 욕해 줬는데?”
“시발년이라고 욕했어.”
혜진의 입에서 나오는 예상치 못한 단어. 혜진이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 현수는 혜진을 다시 쳐다본다.
“아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놀이에 지친 한주가 현수에게 말한다.
“그래, 맛있는 거 먹고 집으로 가자.”
현수와 아이들은 텐트로 향한다.
젖은 수영복을 벗고 셔츠에 반바지로 갈아입은 아이들, 현수도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들이 가판대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닭고기꼬치와 핫도그를 두고 먹고 있다. 녀석들은 뭐가 좋은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며 웃는다.
“누나는 강아지 같아, 약 오르지~.”
“나는 강아지 좋아, 약 안 오르지!~.”
“아이, 누나!”
혜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잡아 봐라~.”
인주도 자리에서 일어나 혜진을 잡으러 간다. 그러자 한주도 덩달아 쫓아간다. 쫓아가던 한주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먹고 있던 핫도그를 집어 들고 다시 쫓아간다.
저 멀리 백사장에 웃으며 뛰어가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현수, 아이들이 먹다 남긴 닭고기꼬치에서 닭고기 한 점 빼내서 먹는다. 현수는 수평선 위에 걸쳐진 붉은 해를 바라보며 말한다.
“소주 한잔 하면 딱이겠는데….”
녀석들은 모래사장에 길게 늘어진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뛰어다니고 있다.
현수네 자동차가 해변가 주차장에서 나온다.
현수의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린다. 운전을 하는 현수는 핸드폰에 표시된 발신자를 확인 후 혜진에게 핸드폰을 건넨다. 혜진이 현수를 대신해서 통화한다.
“응, 엄마.”
“...”
미라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혜진.
“지금 가고 있어”
“...”
미라와 통화하던 혜진이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몇 시쯤 도착할 수 있어?”
“대략 여덟 시쯤?”
혜진은 다시 핸드폰에 대고 말한다.
“엄마, 여덟 시에 도착한대.”
그 옆에 있는 한주가 혜진이 통화하고 있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으며 말한다.
“누나 나도 전화할래.”
혜진이 반사적으로 핸드폰 든 손을 빼며 말한다.
“안 돼!”
휴대폰에 귀를 대고 있는 혜진이 말한다.
“알았어.”
혜진이 한주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엄마?”
“...”
핸드폰을 귀에 대고 진지하게 미라의 말을 듣는 한주.
“응, 재미있었어.”
“...”
“응, 아빠 말 잘 들었어.”
옆에서 한주의 통화를 듣던 혜진이 말한다.
“너 오늘 아빠에게 혼났잖아!”
그러자 한주가 큰 소리로 혜진에게 말한다.
“나는 오늘 아빠에게 혼 안 났거든!”
운전하는 현수는 한주의 말에 만족한 듯 빙그레 웃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도로, 뒷자리에 있는 아이들이 어느새 잠들어 있다. 머리를 옹기종기 맞대며 잠자고 있는 녀석들.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제각기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미라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내가 왔다.”
한주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미라에게 자기가 마치 뭐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말한다. 미라는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익은 아이들을 보며 웃는다.
“아유, 재미있게 놀았어?”
녀석들은 미라에게 경쟁적으로 자랑하듯 말한다.
“응, 재미있었어.”
“보트도 탔어.”
“핫도그도 먹었어!”
아파트 복도가 녀석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시끄럽다.
작은 14인치 TV가 켜져 있는 작은방, 현수가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아있다.
현수는 해변 가판대에서 먹다 남겨온 닭고기꼬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TV에 눈을 꽂고 있다.
방문 밖에서 미라와 아이들이 하는 대화가 들린다.
“오늘 재미있었어?”
“응,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응. 아주 재미있었어.”
혜진의 말에 이어서 한주도 말한다. 목소리의 크기로 봐서 녀석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현수, 소주를 마시며 웃는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한주의 말.
“그런데 아빠가 오늘 화났어.”
“정말?”
미라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한주가 털어놓기 시작한다.
“아빠, 오늘 대빵 화났어.”
“아빠가 왜 화가 났는데?”
소주잔을 든 현수는 긴장하며 한주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응, 우리가 말을 안 들어서 화냈어.”
그러자 혜진이 억울하다는 듯 말한다.
“나는 아빠 말 잘 들었거든!”
그 말을 듣고 웃는 현수, 나직이 속삭인다.
“녀석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현수가 자고 있는 작은방, 인주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현수를 흔들어 깨운다.
잠을 자던 현수가 고개를 들어 인주를 바라본다.
“응, 인주야 왜?”
인주는 자기 귀를 양손으로 감싸면서 말한다.
“아빠, 이렇게 해 봐.”
현수가 인주의 말에 따라 양손으로 감싼다. '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 바다 소리 나지?”
“응.”
현수가 웃으며 대답한다.
“저번에 아빠랑 바닷가 갔을 때 나는 소리?”
“응.”
“또 갈까?”
“응.”
“그때 재미있었어?”
“응.”
인주가 느닷없이 현수에게 묻는다.
“아빠, 그때 왜 그랬어?”
현수는 인주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챈다. 인주의 물음에 현수가 인주를 잠시 쳐다보다가 말한다.
“인주가 그때 아빠를 잃어버렸으면 인주는 어떻게 돼?”
인주는 대답이 없다. 현수가 다시 인주에게 말한다.
“아빠가 인주를 잃어버리면 아빠는 평생을 슬프게 살아야 하잖아, 그래서 화가 나서 인주를 때렸어.”
인주가 수긍하듯이 말한다.
“그랬구나.”
누워있는 현수는 새삼 미안해진 마음에 인주를 끌어당겨 안아준다.
작은방이 잔잔한 파도 소리로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