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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Dec 02. 2024

아이들의 호기심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44화 - 아이들의 호기심

출근하는 현수가 미라를 보며 말한다.

“오늘 대학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좀 늦을 거야.”

“예, 너무 늦지 마세요.”

현수가 웃으며 집을 나선다.



퇴근 후 식당에서 만난 민수의 대학 친구 진철과 재군, 이렇게 셋이서 소주를 마시며 자식들 이야기에 빠져있다. 진철이 은근히 딸자랑을 한다.

“우리 집 딸내미는 장난이 아니야, 우리 때 하고 다른 것 같아.”

“그럴만하지, 너 딸은 이제 일곱 살이잖아, 미운 일곱 살.”

민수의 말에 재군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너 어떻게 진철이 딸내미 나이를 알아?”

“우리 셋째하고 비슷한 시기에 진철이가 둘째 낳았잖아.”

현수는 자기 자식 많은 것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 굳이 둘째와 셋째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말을 이어간다.

“너의 딸은 미운 일곱 살이지만 우리 아들은 무서운 일곱 살이야, 자기 위의 누나하고 형을 완전히 무시해.”

일행이 현수의 말에 웃는다. 그때 재군의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재군이 양해를 구하려는 듯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통화를 이어간다.

“오우, 미스터 브라운! 왓쯔더 매러?”

현수와 진철은 재군이 통화하는 동안 대화를 멈춘다.

“리얼리? 아이윌 첵 라잇나우... 아윌 콜백 위딘 원 아워... 오케이 생큐.”

재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회사에 다시 들어가 봐야겠는데, 새끼들이 내가 보내준 서류에 컴플레인을 거네. 빨리 들어가 봐야겠어.”

“그래, 빨리 들어가 봐.”

“얘들아, 먼저 가서 미안, 대신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재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서운한 표정의 현수와 진철은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재군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반 병 남은 소주를 보면서 현수가 말한다.

“아이씨, 저 새끼가 가니까 분위기가 싹 바뀌네.”

진철도 서운한 듯 말한다.

“그러게, 2차 갈려고 했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할까?”

“그래, 그러자, 오래간만에 제수씨도 한번 보고.”

현수와 진철은 남아있는 소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늦은 저녁 TV를 보고 있는 가족.

한주는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미라의 무르팍을 차지하고 있고 인주와 혜진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

TV에서 만화영화 피날레 음악이 나오자 무표정하게 TV에 눈을 꽂고 있던 미라가 반색하며 말한다.

“TV 끝, 이제 책 볼 시간.”

아이들이 일제히 TV를 끄는 미라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엄마, 조금 있으면 핑클 이효리 나오는데 좀 보면 안 돼?”

살갑게 말하는 혜진의 말에 미라가 어림도 없다는 듯 잘라 말한다.

“8시 반까지만 TV 보기로 엄마랑 약속했잖아.”

혜진이 다시 애원하듯 미라를 바라본다. 그때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울린다.

“여보세요. …. 아, 진철 씨하고 온다고요? …. 뭘 준비할까요? …. 예, 알겠어요.”

미라가 전화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엄마, 아빠야?”

“응. 아빠가 아빠 친구하고 집에 온대.”

“아빠 친구가?”

“응.”

미라가 일어나서 냉장고 쪽으로 간다. 혜진은 그 틈을 이용하여 리모컨을 잡고 음악이 나오는 TV 채널을 켠다.


현관문 밖으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TV를 보던 아이들이 일제히 현관문을 바라본다.

이내 현관문이 열리고 맥주가 뜬 비닐봉지를 든 현수와 과일이 든 봉투를 든 진철이 들어온다.

미라는 무르팍에 앉은 한주를 밀어내고 일어서며 진철에게 인사한다.

“어머, 안녕하세요?”

“제수씨,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죠?”

“예, 아기 엄마도 잘 있죠.”

아이들이 일제히 현관 쪽으로 다가와 진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아이구, 귀엽구나.”

녀석들은 낯선 손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미라를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세 녀석이 동시에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진철은 들고 있던 과일을 미라에게 건넨다.

“아이들 주려고 샀는데 변변치 않습니다.”

“아유, 그런 말씀 마세요.”

진철은 현수를 따라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작은방에 들어선 현수와 진철이 방에 앉는다. 뒤이어 미라가 계란말이와 치킨너깃을 올린 밥상을 들고 작은방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차린 게 없어요.”

“별말씀을요,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얘들은 잘 있죠?”

“녀석들, 장난이 아니죠, 하하.”

거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방문이 열린 작은방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얘들은 다 똑같죠, 얘들도 그래요.”

“하하하”

“혜진 아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주세요.”

미라가 작은방에서 나오면서 방문을 닫는다. 작은방 방안을 염탐하듯 보고 있던 녀석들은 방문이 닫히자 아쉬워한다. 인주가 궁금한 듯 미라에게 묻는다.

“아빠 술 마셔?”

인주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한주도 끼어든다.

“아빠 반찬도 먹어?”

“응.”

“밥은 안 먹어.”

녀석들은 작은방에 귀를 쫑긋 세워 온 신경을 집중한다. 미라는 과일을 깎으며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웃는다.



맥주를 시원하게 한잔 들이켠 진철.

“확실히 아이 셋은 집 분위기가 다르네.”

“얘들 크는 집은 다 똑같지 않나?”

“아니야, 뭔가 꽉 찬 느낌이 드는걸, 부럽다.”

“그래서 그런가, 예전에 열세 평 아파트에 살 때,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애들 셋을 데리고 나가면 그렇게 부러워하더라고,”

“당연히 부러워하겠지.”

“그래서 그 아파트 단지에 우리 집을 얘들을 보고 얘 셋을 만든 집이 몇 있어?”

“에이, 설마.”

“정말이야, 이런 것을 보면 아이 낳는 것은 경제적인 것도 고려하지만, 문화적인 부분도 좀 있는 것 같아.”

“경제적인 것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것이지, 집만 넓어봐, 아이들 많이 낳지.”

“과연 그럴까, 넓은 평수 아파트 단지에 자녀들이 많지는 않지.”

“맞아, 잘 사는 맞벌이일수록 외둥이가 많지.”

둘은 맥주를 들이켠 후 안주를 짚는다.

“그럼, 문화적인 것 때문에 너도 셋째를 낳았단 말이야?”

현수는 방문 쪽을 슬쩍 본 후 낮은 톤으로 말한다.

“셋째는 실수였어.”

진철이 기분 좋게 맞장구를 친다.

“잘한 실수네.”

그렇게 말하며 민수와 진철이 웃는다.


미라가 깎은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미라를 따라 일제히 움직이는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길. 

아이들은 미라가 방에서 나와 문을 닫힐 때까지 작은방을 집중적으로 응시한다.


미라는 진철의 대접에 신경 쓰느라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공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거실에서 미라 무르팍과 그 옆에 앉아 TV에 눈을 꽂고 있는 아이들, 사실 녀석들은 작은방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TV에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진철이 남아있는 맥주를 마저 들이켜며 말한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이제 가볼게.”

“뭐 벌써 갈려고.”

“아니야, 이제 일어나야지.”

진철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현수도 아쉽다는 듯이 뒤따라 일어선다.


현수 방문이 열리자 작은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획 돌려 현수와 진철을 쳐다본다. 

미라가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들도 모두 일어난다. 

“잘 있다가 갑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때는 제대로 준비할게요.”

“아유, 그런 말씀 마세요. 너무 잘 먹었습니다.”

진철은 현관 바닥에 네 줄로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들을 바라보며 현수에게 말한다.

“야, 부럽다.”

“뭐가?”

“가족이 많으니까 진짜 부자 같아서.”

현수가 웃으며 미라에게 말한다.

“친구 택시 타는 데까지, 바래다주고 올게.”

“예.”

미라는 이방인 진철을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탐색’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히 가세요.”

혜진과 인주가 동시에 인사한다. 그러자 한주도 질 수 없다는 듯 더 길고 힘차게 인사한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진철이 웃으며 아이들을 부러운 듯이 보며 인사를 받아준다.

“그래, 잘 있어.”

현수와 진철이 나가자 미라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간다.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이들이 작은방으로 들어와 술상 위에 현수가 반쯤 남긴 맥주컵을 본다. 

혜진이 그 맥주컵을 들고 맥주를 마신다.

“아이 셔.”

혜진이 맥주 마시는 것을 조바심 나게 쳐다보던 한주, 혜진이 내려놓은 맥주컵을 들고 과감하게 들이켠다.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마신 맥주를 컵에 뱉어낸다. 

“이상해!”

그 옆에 서 있던 인주는 그 ‘맥주’라는 것을 눈을 찡그리면서 본다.


진철을 배웅한 미라가 작은방에 들어와 술상을 들고 나가며 녀석들에게 말한다. 

“자, 어린이들 이제 자러 갑시다.”

술상을 치운 미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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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깜찍한 부조리' 전반부를 마칩니다.

후반부를 준비하여 다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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