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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Nov 29. 2024

무서운 일곱 살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43화 - 무서운 일곱 살

미라는 유치원 가방을 등에 멘 한주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한주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엄마, 임정숙이 안희태를 때렸어, 그래서 안희태가 울었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때렸다는 말에 미라가 의문이 생긴다.

“임정숙이 힘이 쐬어?”

“임정숙이 키가 커, 제일 커,”

한주도 그 임정숙이라는 여자아이와 싸울까 봐 걱정되는 미라.

“한주는 임정숙하고 싸우면 안 돼.”

그러나 한주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임정숙보다 내가 더 쐬어.”

미라는 우려스러운 얼굴로 한주에게 묻는다.

“임정숙과 싸웠어?”

한주는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아니, 내가 말하니까 임정숙 울었어.”

“뭐라 말했는데?”

“말하기 싫어.”

뭔가 있는 듯한 한주, 미라가 재차 추궁한다.

“말해봐.”

“싫어.”

분명히 뭔가 있는데 버티는 녀석, 미라가 포기하는 대신 한주에게 일침을 놓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말 하면 안 돼, 선생님에게 혼나, 알았지?”

“엄마, 맛있는 거 사러 가.”

“엄마 말 알아들었냐니까?”

“응.”

한주는 할 수 없다는 듯 미라에게 겨우 대답해 준다.



집의 현관문이 열리자 먼저 들어오는 한주.

“내 왔다!” 

한주가 거실로 들어서며 메고 있던 유치원 가방을 아무렇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곧장 한쪽 구석에 있는 변신 장난감 자동차를 쥐고 놀기 시작한다.

“자, 옷 벗어야지,”

한주는 미라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미라가 할 수 없다는 듯 한주의 옷을 벗긴다.

“자, 손 위로 올리고, 만세.”

한주가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미라가 옷을 벗긴다.

“자 바지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한주는 여전히 장난감을 만지고 있다.


미라가 밥상을 가져다 놓고는 그림이 그려진 학습서를 그 위에 펼친다.

“한주야, 이거 하자.”

한주는 미라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장난감만 붙잡고 있다.

“나중에 형아 오면 놀고, 줄 따라 줄 따라 해야지.”

한주가 무응답에 미라는 밥상 옆에서 놀고 있는 한주를 마냥 쳐다보기만 한다.

“형아가 오기 전까지 공부하자.”

손에 쥔 장난감을 보며 배짱부리는 한주.

“공부 안 할래.”

“공부 안 하면 바보 돼.”

한주 공부시키려고 애를 태우는 미라. 그러나 한주는 딴전을 피우며 버틴다.


번호 키 누르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인주를 보는 미라.

“인주 학교 잘 다녀왔어?”

한 속도 느린 인주의 기계적인 인사.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주를 쳐다보지도 않는 한주, 무릎을 꿇고 한 손에 쥔 장난감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고 있다.

인주는 한주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를 본다.

“어?”

인주가 내뱉는 소리와 함께 한주는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안방으로 도망치고 있다.

동시에 인주도 등에 멘 가방을 벗어던지고 한주를 뒤따라 안방으로 쫓아간다.


안방으로 도망쳐온 한주는 장난감 자동차를 안고 방바닥에 엎드린다.

“내 것 내놔!”

뒤쫓아 온 인주가 장난감을 품에 안고 엎드려 있는 한주의 몸을 뒤집으려 한다.

그러나 한주는 머리마저 방바닥에 박은 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야, 빨리 내놔.”

미라도 안방으로 들어온다.

“엄마, 한주가 내 장난감 가져갔어.”

한주는 머리를 살짝 돌려 미라를 본 후 이내 다시 이마를 바닥에 붙인다.

한주의 엉뚱한 모습에 미라는 웃음조차 나지 않는다.

대신 공부하자고 그렇게 말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한주, 미라는 이것이 공부하라고 한주를 다그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장난감 이리 내.”

한주는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냉정하게 말하는 미라를 곁눈질로 본다.

미라가 냉정한 투로 말한다.

“엄마가 맴매 가져오기 전에 이리 내놔.”

그러자 한주가 꿇어앉으며 안고 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미라에게 건넨다.

미라가 건네받은 장난감 자동차로 손을 가져가는 인주.

미라는 인주에게도 냉정하게 말한다.

“안 돼, 한주가 공부할 때는 장난감 가지고 놀 수 없어.”

한주는 이래저래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 아이들은 좁은 소파에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고 미라는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보는 TV에서 극 중 대화가 흘러나온다.

“야, 이 자식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라고? 이 자식? 이것이 겁이 없군.”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이 새끼 오늘 잘 걸렸다.”

이어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마라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TV를 끈다.

“아, 엄마~”

TV에 심취해 있던 한주는 TV가 꺼지자 아쉬워한다.

“이런 나쁜 말이 나오는 것은 보면 안 돼!”

혜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있는 리모컨을 들고 다시 TV를 켠다.

“엄마, 노래는 괜찮지?”

댄스 가수가 노래 부르는 채널로 돌린다.

심술이 난 한주가 혜진에게 분풀이한다.

“야, 너, 왜 그래!”

“한주야, 너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미라의 말에 한주는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거린다.

“하여튼 TV가 얘들을 다 버려놓는다니까.”

미라가 아이들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인주와 한주가 거실 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녀석들은 장난치듯이 서로의 장난감을 뺏고 뺏기고 한다.

곁에 앉은 현수가 장난치는 녀석들을 보면서 말한다.

“장난치지 말고 서로 빌려주면서 놀아.”

그러자 한주가 웃으면서 말한다.

“아빠, 형아는 짱 구려, 장난감 잘 안 빌려줘.”

인주도 웃으면서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한주는 어젯밤에 자다가 오줌 쌌어.”

“그래?”

현수가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한주를 쳐다본다.

자존심이 상한 한주, 인주를 차갑게 째려본다. 그리고 낮은 톤으로 인주에게 말한다.

“죽을래?”

한주의 차가운 한마디에 인주가 움찔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이것을 본 현수는 순간적으로 한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한다.

“이 녀석이 어디 형한테!”

한주는 억울하다는 듯 현수를 보며 소리친다.

“아이씨, 나보고 오줌싸개라잖아!”

현수는 재차 한주의 어깻죽지를 때리며 말한다.

“그렇다고 형한테 깡패처럼 말을 해? 너가 깡패야?”

얻어맞은 한주가 현수에게 반항하듯 말한다.

“아빠, 경찰서 가, 사람 때리면 경찰서 가야 해!”

현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한주를 쳐다보다가 말한다.

“그래, 아빠가 사람을 때렸으니 감옥 가야 해, 감옥 갈게.”

한주가 의외라는 듯 머뭇거린다.

그것을 본 현수는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지금 경찰서 가자.”

한주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모습. 한주는 현수를 달래듯 말한다.

“아빠, 용서할 게 경찰서 안 가도 돼.”

현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야, 잘못했으면 경찰서 가야 해.”

당황하는 표정의 한주가 울기 시작한다.

“아빠 미워!”

거실에서 신문지를 펴 놓고 채소를 다듬던 미라가 한주를 보듬으며 말한다.

“아유, 왜 아이를 울리고 그래요.”

한주는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들은 최고의 협박성 발언을 써먹는다.

“아빠 안 도와줄 거야!”

현수가 한주를 놀리듯이 말한다.

“아빠 뭘 안 도와줄 건데?”

도무지 협박이 통하지 않는 현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내뱉는 한주의 필살기 한마디.

“아빠, 나빠!”

미라가 이 광경을 보며 말한다.

“하유 참, 그만하세요.”

현수는 한주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웃는다.

그 모습을 본 미라가 말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다 똑같아!”



시간이 지나고, 현수와 한주가 소파에 앞뒤로 앉아 TV를 보고 있다.

TV 화면에 여자가 웃으면서 남자 친구의 가슴을 툭 친다.

“어! 저 여자가 사람 때렸어. 저 여자 감옥에 가야 해.”

현수가 한주 들으라는 듯이 말하자 현수 앞에 앉은 ‘무서운 일곱 살’의 한주가 눈을 치켜뜨고 현수를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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