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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Dec 18. 2024

도장을 찍다

연재소설 : 러브 코딩 47화 - 도장을 찍다

회사 외부에서 하는 IT 시스템 관련 교육이 네 시 반에 마친다. 

회사를 벗어나 홀가분한 민수와 세 명의 회사 동료들은 한잔 꺾자며 의기 투합하여 식당에 들어가 앉아 있다. 

주문을 마치고 술과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 민수의 허리춤에 있는 삐삐가 울린다. 민수는 삐삐 내용을 확인한 후 식당 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확인한다.

“수신된 메시지 1개가 있습니다. 들으시려면 1번과 우물 정(#) 자를 눌러주세요.”

민수는 안내 메시지에 따라 버튼을 누른다. 

“새로운 메시지 한 개.”

여자 성우의 안내 음성에 이어 재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민수야 나 재희야, 너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커피숍에서 기다릴게, 일 마치면 좀 만나.”

민수는 식당에 있는 함께 온 일행에게 사정을 말한 후 음식점을 나선다.


재희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마음이 급한 민수는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로 향한다.


커피숍으로 들어선 민수는 주위를 둘러본다. 커피숍 한쪽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재희, 민수는 그곳으로 다가가 재희 맞은편에 앉는다.

“오래 기다렸어?”

재희는 양복이 아닌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는 민수를 보며 의아한 듯 묻는다.

“아니, 방금 왔어. 너 옷이 왜 그래?”

“오늘 회사 출근 안 하고 여의도에서 교육받고 오는 거야.”

“공부하기 싫어하는 너가 교육 다 받고…, 힘들겠다.”

놀리듯 말하는 재희. 민수는 전문직임을 자랑하듯 말한다.

“개발방법론이라고, 전산 직무교육이야.”

“오, 그래?”

민수의 말에 장난스럽게 맞장구쳐주는 재희.

“그래도 학교 공부보다는 재미있어, 현실감도 있고.”

“현실감? 너가 현실감이라니까 이해가 안 돼.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얘가….”

민수를 놀리는 재희. 민수는 재희의 핀잔을 웃어넘기며 말한다.

“하참…. 그래도 너는 나를 좋아하잖아?”

민수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잠시 뜸을 들이는 재희, 민수는 궁금한 듯 재희를 쳐다본다. 그러자 재희가 입을 뗀다.

“취직하려고 해.”

그 말을 들은 민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묻는다.

“유학은 어쩌려고?”

“올해도 어드미션(admision : 입학 허가)이 안 왔어, 그냥 취직이나 하려고.”

민수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재희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그런 결정하기는 힘들었겠다. 오랫동안 준비했잖아?”

민수와는 달리 재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내가 유학 안 간다니까 기쁘지 않아?”

“당황스러워, 너가 이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짠해.”

재희는 가방에서 입사서류를 꺼낸다.

“입사서류에 보호자 도장을 찍는 게 있어, 너 도장을 받으려고 해.”

민수는 재희가 내민 입사서류를 말없이 쳐다본다. 재희가 그런 민수를 보며 묻는다.

“왜?”

“아니, 얼떨떨해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재희, 민수는 기분이 묘하다. 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여기 너 도장이 필요해.”

“내 도장이 지금 사무실에 있는데.”

민수는 시계를 본다. 5시 45분. 사복 입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눈치 보이긴 해도 이까짓 것쯤이야 하고 생각하는 민수,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만 기다려 줘.”

민수는 커피숍에서 급히 나간다.


민수가 사무실에 들어서며 영길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영길은 이 시간에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닥친 민수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자기 자리에 다가선 민수는 명선에게도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일을 하고 있던 명선 역시 어리둥절한 눈으로 민수를 쳐다본다.

“어, 교육받으러 간 것 아니었어?”

“잠시 도장을 좀 가지러 들렀어요.”

민수는 자기 자리의 책상 서랍에서 도장을 챙긴 후 말한다.

“먼저 퇴근할게요.”

명선은 그런 민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출근은 했냐? 퇴근을 하게.”

민수는 웃으며 급하게 사무실에서 나간다.


커피숍에 들어선 민수는 카운터에서 계산한 후 재희에게 다가간다.

“밖으로 나가자.”

“왜?”

“분위기 있는 곳에서 도장 찍어야지.”

“칫!”

재희가 웃으며 민수를 따라나선다.


커피숍을 나온 민수는 재희에게 지하 식당가의 고급 일식집을 가리킨다.

“여기 가자.”

“너무 비싸지 않을까?”

“도장 찍는 중요한 행사를 삼겹살집에서 할 수는 없지.”

민수가 재희를 일식집으로 이끈다.


민수는 메뉴를 보면서 재희에게 말한다.

“초밥 어때? 저녁도 되고, 안주도 되고.”

“누가 보면 내가 술꾼인지 알겠어.”

“너 술꾼 맞잖아!”

“야!”

재희가 종업원의 흘끗 보며 능청스러운 민수를 힐난한다. 민수는 웃으며 주문한다.

“여기 초밥 하나 모둠회 하나 그리고 소주 맥주 한 병씩 주세요.”

“너무 비싼 거 시키는 것 아니니?”

대답 대신 웃는 민수,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낸다.

“도장 찍을까?”

재희는 가방에서 입사서류를 꺼내서 민수 앞에 펼친다. 민수는 재희가 내민 서류의 보호자 난을 쳐다본 후 자기 가방에서 볼펜을 꺼낸다. 보호자 난에 자신의 이름 ‘이민수’를 적는다. 그리고 민수는 그 이름 옆에 정성스럽게 도장을 힘껏 찍는다. 재희는 도장 찍는 민수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민수와 재희는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유학을 포기한 재희의 담담한 모습과 그런 재희를 위로하는 민수의 모습이 진지하게 이어진다.


지하철역의 개표구 앞에서 민수와 재희가 서 있다.

“너희 집 부근에 가서 한잔 더할까?”

“아냐, 힘들어.”

“그럼, 같이 있어 줄까?”

그 말에 재희가 웃으며 말한다.

“엉큼하긴.”

민수는 개표구 안으로 들어서는 재희를 보며 말한다.

“재희야, 내가 재미있게 해 줄게.”

마음이 담긴 민수의 말에 재희는 웃으며 지하철 계단을 향해 간다. 민수는 재희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낀다.



민수가 웃으며 집으로 들어오자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말한다.

“얄궂다, 니가 웃으면서 집에 들어올 때가 다 있네.”

민수는 여전히 해죽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회사에 출근한 민수는 영길과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개발한 온라인 화면에 대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전에 말했듯이 이 부분은 복잡하니 그냥 단순하게 만들어, 그냥 금액만 나오게 해.”

영길의 의견에 민수도 지지 않고 말한다.

“처리해야 될 내용을 요약 문구로 나타내면 사용자가 더 편할 것 같은데요.”

“그것은 사용자가 화면을 보면서 판단할 일이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영길의 고집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명선으로부터 들은 민수, 포기하듯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예 알겠습니다.”

민수는 자리로 돌아가 영길이 말한 대로 온라인 화면을 바꾸기 위해 프로그램을 고치기 시작한다.


커피 자판기 앞에 신계약팀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화장실을 가는 민수는 그 옆을 지나다가 중만을 보며 반갑게 인사한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민수씨,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중만은 민수의 히죽거리는 얼굴을 보며 묻는다.

“아니요.”

민수는 주춤거리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어제 도장 찍었어요.”

어리둥절한 중만, 민수의 말뜻을 이내 알아채고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아, 도장! 그 친구?”

“예.”

“그럼, 그 친구와 결혼하는 거야?”

환호하듯 말하는 중만. 민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럴 것 같아요.”

“좋았어요?”

호기심에 차서 묻는 재현, 중만은 한술 더 떠서 짓궂게 묻는다.

“어디서 도장 찍었어?”

“일식집에서 찍었어요.”

“일식집? 일식집 룸에서?”

의외라는 듯이 말하는 중만, 신계약팀 팀원들도 민수의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도장이 그 도장 아닙니다.”

“무슨 도장?”

“진짜 도장을 찍었어요.”

여지없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민수, 중만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무슨 뜻이야?”

“어제 그 친구 입사지원서에 보호자 도장을 찍어 줬어요.”

“그 도장!?”

그 말을 들은 중만과 팀원들이 크게 웃는다. 민수는 그들을 놀리듯 한마디 덧붙인다.

“예, 빨간 인주를 잔뜩 묻혀서 찍어줬어요.”

민수는 크게 웃는 그들을 남겨두고 화장실로 향한다.


민수는 모니터에 펼쳐진 화면을 살펴본 후 영길에게 말한다.

“팀장님, 온라인 화면 수정 마쳤어요.”

“그래? 보고할 준비 다 됐지?”

“예.”

민수와 영길이 서부장 자리로 간다.


서부장이 최종적으로 수정된 온라인 화면을 보고 있고 그 옆에 영길과 민수가 앉아 있다, 화면을 보던 서부장이 민수를 보며 말한다.

“이거 왜 이래? 이거 왜 바꾸었어?”

민수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린다. 영길이 나서서 대답한다.

“복잡한 것 같아서 간단하게 바꿨습니다.”

그 말에 서부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아니, 그것을 왜 바꿔?”

영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민수 역시 입을 다물고 모니터에 펼쳐진 화면에 눈을 꽂고 있다.

“다시 예전대로 바꿔.”

“예,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서부장은 대답하는 민수를 보며 말한다.

“전에 대로 바꾼 후 메인 시스템 반영의뢰서 결재서 작성해서 가져와.”

“예, 알겠습니다.”

영길과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수는 작성한 운영시스템 반영의뢰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인주에게 보여준다. 인주는 민수가 건넨 문서를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인다.

민수는 결재판에 작성한 서류를 끼운 후 영길의 자리로 다가간다.

민수는 영길에게 결재판을 내밀자 영길은 아무런 말 없이 결재란에 서명한 후 민수에게 건넨다.

민수는 서부장 자리로 가서 꾸뻑 인사한 후 서부장에게 결재판을 내민다.

서부장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결재한다. 그리고 다시 결재판을 민수에게 웃으면서 내민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온 민수는 머리 뒤로 양손을 손가락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혀 뿌듯하게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본 선영이 민수에게 말한다.

“일 다 끝내고 나니 기분 좋지?”

“예.”

싱긋이 미소 짓는 민수, 세상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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