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전국에 2개밖에 없는 국가정원 중 하나인 태화강국가정원이 있다. 하나는 순천만국가정원인데 순천만국가정원은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인조정원이라면 태화강국가정원은 원래부터 그 자리 그대로 있었던 고수부지 정원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자연정원이다.
그리고 순천만국가정원은 입장료가 8,000원 정도로 꽤 되는데 태화강국가정원은 입장료가 무료다. 원래는 태화강국가정원도 입장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울산시민들이 "거기 원래 우리가 맨날 산책하는 길인데 뭔 돈을 받아!!"라는 민원을 들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무료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가보면 엄청나게 크고 멋진 자연정원인데 입장료가 무료라니 내가 줄곧 자라왔던 울산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태화강국가정원에 갈 때마다 실감하고 있다.
날씨가 너무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한 2023년 11월 12일.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태화강국가정원에 방문했다.
원래는 <카페코이>라는 곳에서 태화강국가정원에 있는 4km 정도 길이의 고려시대 중기부터 있었던 대나무숲인 <십리대숲>을 모티브로 한 디저트와 음료인 <대숲빵>과 <대숲라떼>를 어머니에게 사주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온 김에 산책도 좀 하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와 같이 잠깐 들어갔다 나오게 되었다.
가을의 끝에 방문한 태화강국가정원은 이미 봄꽃들이 봄에 맞춰서 개화를 하도록 씨앗을 많이 심어둔 상태였다. 그리고 가을국화도 많이 시들고 있는 타이밍이어서 주말임에도 비교적 인파가 적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코스모스는 아직 남아있어서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신이 나서 코스모스를 보면서 산책을 즐겼다. 예전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요즘은 코스모스를 보면 정말 담백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확실히 이제 어린 나이는 아닌 모양이다.
가을 하면 역시 억새와 갈대가 먼저 생각이 나는데 하얗고 하늘하늘한 놈이 억새이고 거무튀튀하고 강인한 놈이 갈대이다. 사실 억새와 갈대의 차이는 옆에 두고 나란히 보면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억새와 갈대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참고로 억새와 갈대는 해가 지려고 하는 시간대에 역광으로 사진을 찍으면 정말 멋지게 잘 나온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면 전체적인 사진의 밸런스를 해치는 게 억새와 갈대 이 녀석들 참 묘한 매력이 있다.
가을은 참 돌아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봄보다는 선선한 가을을 더 좋아해서 요즘 같은 날에는 가끔 일 년 내내 지금과 같은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행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나는 일 년 내내 성수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과로사로 쓰러지는 상상을 하면 고개를 절로 가로젓게 된다.
가을의 끝에 방문한 태화강국가정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평화>그 자체였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살짝 피크가 지난 시점이지만 아직도 빛을 발하지 않고 끈기 있게 버티고 있는 꽃들과 단풍들, 인심 좋은 울산 시민들의 조화는 누가 봐도 평화로운 자연정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태화강국가정원에 방문한 어머니도 이전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모습에 대만족을 하면서 즐거운 산책을 즐겼고 아들로서 어머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해지는 건 당연하다.
<카페코이>에서 먹은 대숲라떼와 대숲빵도 훌륭해서 모든 삼박자가 다 잘 맞아떨어지는 하루를 보냈다. 가을이여 지금처럼 매년 꾸준히 영원히 찾아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