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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소아과의사 Oct 01. 2023

한참을 머물러 있다가 다시 나아가기

극복하기의 기술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저도 일을 하다보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가 잘 못 되었을때,의료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서비스업의 특성상 사과를 해야할 경우가 있는 경우지요. 절차상의 문제고 그런 경우에 불편을 초래한건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발견즉시 고치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소위 "빵꾸"가 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건 저희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고요. 레지던트 할때 병동에서 받았던 컴플레인 전화중 하나였습니다. (이 예가 이해하기 쉬우실 것 같아서) 요로감염으로 응급실 경우해서 입원한 경우, 응급실에서는 상세불명의 요로감염으로 입원장을 내고 입원을 시킵니다. 입원한 내내는 그 상병명을 달고 입원을 해있지만 주치의가 상황에 따라 병명을 바꿔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로감염의 부위가 신우신염이나 방광염 등으로 드러났을때는 그 부위를 명시해주고 퇴원을 시키는게 맞습니다만, 정신없는 레지던트 1년차가 그걸 챙길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 병명의 의미와 중요성을 아직 깨닫기에는 좀 이른 시기였던 것 같아요. 병동에서 1년차와 간호사가 서로 신나게 상황을 설명합니다만, 좀처럼 환자의 의견과 간격이 좁혀지지 않습니다. 요는 병명이 상세불명의 요로감염으로 나갔는데, 나는 입원한 동안 신우신염이라고 들었고, 신우신염은 실비보험에서 커버가 된다는데 지금 병명이 상세불명의 요로감염으로 되어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는게 컴플레인의 취지였고요. 해결 방법은 명로한데요. 관련 부서에 연락을 해서 입원 당시 상병명을 바꿀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미쳐 못챙겨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고 진단서를 다시 발급해드리면 되는데, 그 일이 이해가 잘 안가는 1년차는 화를 내시는 보호자의 감정에만 몰입해서 헥헥대고, 간호사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설명하느라 진땀빼고요. 환자 보호자분은 대체 왜 일을 이렇게 하냐고 화를 내시겠습니다. 

1년차의 입장은 저 나름대로 하느라 열심히 했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는 보호자분이 원망스러울 수 있고, 내가 이러려고 의사 하나 싶은 생각도 들거에요. 보호자분은 의사라는 사람이 상병명도 하나 제대로 처리 안하고 도대체 우리애를 제대로 치료는 한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드실 법 하지요. 


엄마, 아빠의 그런 섭섭한 마음을 맞닥뜨릴때, 그리고 그 상황이 제가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일때 좌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많은 좌절을 만들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한 일에서 닥치는 어려움으로 인해 좌절을 하실 때가 많을 거에요. 후회도 되고, 자책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냥 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때도 있지요. 그게 일이든, 공부든, 어떤 일이든 선택한 일이든 어쩔수 없는 일이든 회의를 느끼실때가 있을 거에요. 

그리고 혹시라도 지금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함께 손을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힘을 내세요. 당신 혼자가 아닙니다. 


최근에 이런 일들로 한참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대학원 수업을 가서도 마음이 내내 안좋다가, 대학원 동기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걸 느꼈어요. 이런 컴플레인이 힘든게 아니고, 그 보호자분의 마음이 이해 되고 걱정하시는 마음이나 불편하신 마음도 다 이해된다. 하지만 내가 이런 불편함을 겪으면서 점점 더 열심히 하지 않게 될까봐 난 그게 두렵다. 혹시라도 다음에 이런일이 다시 생길까봐 방어진료만을 할까봐 그게 무서운것같다, 그렇게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말을 하면서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게 무엇인지 보게 되어서 매우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상담은 그냥 말하게 나두면 알아서 좋아진다는, 경청이 최고의 기술이라는 진리!) 

그리고 선배 선생님들과 단톡방에 호소를 하니 그정도에 무너지면 안된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면서 응원해주셨어요. 

그러다가 문득, 출근길에 단톡방에 계신 한 선생님께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야, 영원히 고통 받지. 하지만 후회는 안할거야." 하셨어요. 

그리곤 "시지푸스지, 돌을 올려도 다시 떨어져버리고 말겠지만, 다시 올려야지 어쩌겠어요."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형벌로 영원히 간을 독수리에게 쪼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지푸스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돌을 높은곳에 올려놓고, 그 돌이 떨어지면 다시 올려놓는 벌을 받았어요. 

어떻게 의사라는 직업만 그런 허망한 경험이 있겠어요. 우리 삶이 모두 그렇지요. 잘되는 것 같다가, 한없이 좋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옳은 것을 선택했다면 (조금더 영악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조금더 너그러웠으면 좋았을 테지만) 후회는 덜하기로. 


한참을 어두운 마음속에 지내다가, 예전에 일하던 병원에 일이 있어서 지역을 방문했어요. 오랜만에 방문하였고, 추억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지나던 행인이 물어보십니다. "예전에 일하시던 선생님 맞으시지요? 혹시 아주 이쪽으로 돌아오신건가요? ",  "아, 아니요. 잠시 방문했습니다. 여긴 이미 좋은 선생님이 계신걸요." , "아, 혹시 오시나 해서 반가웠습니다. "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가셨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날들에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다는걸 기억해야하는데, 저는 왜 자꾸만 작은 확률로 발생하는 그 섭섭한 마음만 증폭해서 보곤 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저의 마음까지도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란걸 알고 있는 때 조차도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까요. 

오늘의 좌절도 어제의 좌절도, 조금은 풀렸습니다. 


꾸준함은 이길 것이 없습니다. 걷다보면, 별로 차이 안나보여도 또 이만큼 와있고, 그래서 더 성장해있는 내모습이 보이겠지요. 

프로메테우스처럼, 시지푸스처럼 영원한 형벌에 갇혀있는 것 같다가도 말이에요. 

따뜻한 말 한마디에, 꽃처럼 웃음이 번지고 감사를 머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에게, 저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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