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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소아과의사 Sep 24. 2023

소아과 진료실에서 자라는 자아와 만나는 방법

인사하기, 도장찍어주기, 하이파이브하기 

1. 들어가면서 

진료를 보다보면, (주로) 조부모님들께서 진료실에서 아기가 울면 당황하시면서, "선생님 나빴네, 할머니가 때찌해줄께"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은 조금 조심해야합니다. 아이들이 필요에 의해 병원에 왔고, 필요에 의해 진료를 보는 와중에 선생님이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면, 나중에 방문할때 더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도 하고요, 아이들 기억에 진료란 나를 위한 것이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어서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말하기로 결정한 과정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인간의 발달 단계 중 자기 인식 과정의 발달을 살펴봄으로써,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함께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고해요. 


2. 아이들의 자기 결정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가 만나는 대다수의 환자들은 자기의 의사결정을 보호자에게 대리하여야만 하는 미성년자들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여러가지 갈등과 문제들이 생깁니다. 어떤 문제들일까요? 

진찰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진찰하다보면,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아이에게 폭력적이지 않은가 하는 고민을 할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픈 아이를 그냥 두는 것은 방치이자 그것 자체로 학대이기도 하겠지요. 

진찰은 그렇저렇 했다고 하더라도 주사를 맞아야한다거나 혈액검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아이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그렇다면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억지로 하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는게 좋을까요? 

만약, 이 아이가 목숨을 다투는 예를 들어,백혈병이라던지, 뇌수막염과 같은 질병이라면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어쩔수 없지만 해야한단다,라고 설득하면서 검사를 진행하겠지만, 감기나 알레르기처럼 지금 당장 위험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해야하는, 혹은 한다면 도움이 될만한 것들, 즉, 선택 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 가능은 아니지만, 당장 아픈게 아닌 상황일때, 예방접종을 놓아야할때 말입니다. 그럴때는 또 다른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지요. 

어쨌든 진찰 과정에서 목을 보고, 귀를 보고, 주사를 맞거나,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해야하는 때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침습적이며 본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극일 뿐이니, 그걸 이해하기 전까지는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입니다. 


 3. 자아개념의 생성 


자아개념은 1세 전후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데 1년이라는 시기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신경과학적으로도 뉴론의 연결은 생후 첫 2-3년간 최대로 발달했다가 이후로 가지치기를 시작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자극을 끌어모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시각과 청각이 더 발달하면서 정보를 획득하여 언어의 체계를 만들기 시작해요. 그리고 몸의 근육들을 중심에서 말초로, 큰 운동에서 작은 운동으로 점차 발달시켜가면서 정교한 운동을 더 넓은 범위에서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기의 발달 이정표는 정말 아이들의 발달의 중요한 체크포인트가 됩니다. 

생후 1년간 뉴론의 연결성 증가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뉴론의 연결성은 증가했다가 감소합니다. 

출생 직후의 아이들에겐 자극과 반응만 있을 뿐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본인의 욕구를 표현하고, 그것이 충족되느냐 충족되지 않느냐에 따라 반응을 합니다. 충족되지 않은 경우에 충족이 될때까지 표현을 하고  충족이 된 경우에는 그 외의 활동을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환경과, 상호작용 그리고 기질에 행동이 결정됩니다. 기질은 많은 경우에 부모님으로부터 옵니다. 

대상관계 이론과 최근 뇌과학적 연구들에 따르면 3개월 이후부터 아이들은 주변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여전히 주양육자를 자신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며 주 양육자의 기분과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4-5개월정도 지나면 아이들의 분리 개별화가 시작되어 수동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여러가지 감각적 탐색을 시작합니다. 

6-8개월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뒤집기도 하고 여러 방향으로 가누기 시작하면서 자율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비로소 엄마가 자신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사회적인 소리의 모음들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의미있는 구음들을 찾아내어 점차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언어라는 체계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세가 될 수록 아이는 상대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게 됩니다. 눈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이 하는 행동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엄마아빠가 너무 좋아함) 그 행동이 강화가 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행동들이 시작됩니다. 

12개월 전후(연구마다 상이)가 되면 아이들은 거울 속에서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라고 인식할 수있게 됩니다. 이때 자아개념이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신체의 움직임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아이들에게 부모와 아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더 강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끔 아이들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당기거나, 엄마를 깨물거나 때리는 행동을 합니다만, 그것은 엄마를 미워해서 그런게 아닙니다. 자극을 주고 그 대상이 어떻게 느끼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프다고 얘기해주고, 그러면 안된다고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강아지들이 엄마 젖을 땔 시기가 되면 어미는 아이들을 호되게 혼냅니다. 더이상 젖을 먹지 않아도 되는 강아지가 엄마 젖을 찾고 그 과정에서 엄마를 아프게 한다면 엄마는 아이를 혼냅니다.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아지들은 자기 형제들과 함꼐 물고 장난치면서 그 과정이 서로에게 어떤 감각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참 놀면서 자란 강아지들은 더 자라면 그때처럼 격하게 장난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회화입니다. 돌정도 된 아기가 엄마를 아프게 할때, 아프다고 얘기해주고, 그것이 상대가 불편한 것이라는 신호를 충분히 주어야합니다. 엄마와 다른 존재라는 것도 이해해야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 친구,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들과도 다른 존재이므로 이런 자극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알려줘야하는 것이지요. 

12개월이 지나면서 식사는 유아식으로 넘어가고 이제 엄마가 섞어준 것을 먹지 않고 따로 담긴 음식들을 먹습니다. 고형식을 먹으면서 자기가 골라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생깁니다. 그리고 자기 주장도 생깁니다. 전에 없이 때를 쓰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밥을 먹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들고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나"라는 경계를 만나면서 나라는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그 세계 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맛과 색,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들도 있겠지요. 그것들은 아마 무조건 피하려고만 할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자아개념이 형성되는 시기에 자기조절을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에게서 자기조절이란 혼자 감정에 북받혀 울다가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울음을 멈추는 것 같은 행동입니다. 자기 조절은 자기인식과 주변인식 그리고 사회적인 반응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합니다. 자기조절은 경험을 통해서 더 발전합니다. 

 12개월이 지나면서는 서서히 규칙을 이해시켜주고 설명해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규칙 안에서 성공을 경험한 친구들은 자아 효능감- 나는 잘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이 성공의 경험을 주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입니다. 단번에 성공하면 좋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걸음마부터 울다가 혼자 그치는 것 까지 모두 실패의 경험을 수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기다려야합니다. 실패하도록 기다려주고 다독이고, 성공할때까지 기다리고 그리고 성공하면 매우 기뻐해주셔야해요. 스스로 해냈고, 너는 앞으로도 해 낼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주셔야합니다. 믿어주셔야해요. 기다리는 동안 조바심이 나겠지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합니다. 

4-5개월부터 시작된 분리개별화 - 부모와 자신을 일체로 여겨 모든 것을 의존하던것에서 개별적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더 성숙해갑니다. 3세가 된 아이들은 부모와 자신이 온전히 다른 개체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의 이해를 위해서 학습을 해나갑니다. 


3개월 이전에 욕구를 충분히 이해받은 아이들은 주변 환경이 자신의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겨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후부터는 혼자 울음을 그치는 등의 상황을 통해 자기 조절을 배워가지요. 자기 조절을 잘하는 아이들은 마음이 단단해집니다. 

아이를 따뜻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시되 자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주셔야합니다. 당연히 실패하겠지만, 기다려주고, 성공했을때 충분히 축하해준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에요. 스스로 단단한 아이는 그렇게 자랍니다. 


4. 진료실에서 

저의 진료실에서 아이들은 도장을 받습니다. 사탕도 줘보고, 스티커도 줘보았지만, 도장이 제일 위험하지 않아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탕은 연령 제한이 있고, 단당류가 건강에 위험하기도 하고요. 스티커는 가끔 먹어서 문제가 됩니다.) 

처음 진료실에 온 아이는 무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막 웁니다. 어찌어찌 진료를 마치고 나서 바로 도장을 손등에 찍어주면 갑작스런 자극에 울음을 그치고 약간은 경계를 풉니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한번 합니다. 그때 "(진찰 잘 받아서 )고마워" 라고 인사를 해줍니다. 

혹자는 아이들에게 사탕같은 것으로 행동수정을 하게되면 동기를 상실하여 나중에 사탕과 같은 보상이 없을때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고 이런류의 행동수정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장난감 도장은 아이들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주고, 지금 당장의 슬픔을 잊게 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훌륭한 일에대한 상으로 "남겨"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이파이브를 통해서 우리는 한팀이고 오늘 우리는 대단한 일을 했어. 넌 멋진 아이야라는 마음을 심어주려고 해요.  아이들은 도장을 자랑스러워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또 이 모든 일을 단지 도장 받음으로 기억하지만, 그 모든 기억 안에는 내가 잘했던 일, 내가 용감하게 이룬일에 대한 표식으로서 도장 찍은일을 기억합니다.  

진료 중 안전을 위해 아이를 잡거나, 보채는데도 강행해야할때, 어김없이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직 자라지 않은 자아에게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갑니다. 네 세계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야하니, 잠시 실례 할께 라는 마음으로요. 

진료를 다 마친 친구에겐 잘했건 못했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싫었지만 그래도 진료실에 들어와주었고 그래서 진료를 다 마쳤으니 고마울 수 밖에요. 어쨌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기까지 보호자의 역할은 병원에 데려오시는 것이니, 아이들의 의견에 반해 병원에 올 수 밖에 없지요. 필연적으로 아이들은 병원에 오는 것이 두렵고 이 과정이 이해되지 않거나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생성되고 있는 그 세계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에요. 

내가 어른이고, 내가 의사니까 그저 오는 나의 환자들을 그렇게 대상화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삶의 주체이고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하니까요. 합리적 판단과 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의견에 반해 무조건적인 의료를 하는 것에는 일단 반대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이곳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재미있으며, 우리 - 부모님, 의료진, 환아 자신이 모두 한팀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무작정 두렵기만 한 곳은 아니리라 믿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자라고 있는 자아를 목격하고 그 자아가 견고하게 자랄때까지 조심스레 지켜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에요. 필요한 것이라고 강요하기 보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기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우리 모두에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들이 저를 콕 지목해서 병원을 오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제 작전이 어느정도는 성공한 것이겠죠? 


아이는 우주입니다. 인간이 참 많은 것을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하나, 생명은 만들수도 살릴수도 없습니다. 생명은 경이입니다. 이 아이들이 우주처럼 충만하고 팽창해지는데 약간의 도움이 되고자한다면, 그저 용기를 주고 기다려주는 것 외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역할이고, 또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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