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저는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몸이 마음과 떨어져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 작년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금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구성주의 심리학입니다. 구성주의 심리학은 하나로만 사람을 보지 않고 환경과 가정, 개인의 건강, 사회의 구성까지 매우 다양한 것을 바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의사로서 사람을 볼 때도 그렇게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이해를 준다는 것을 깨달은 바 있기에 이 이론을 듣고 매우 매력을 느꼈습니다. 융이나 게슈탈트, 이야기 치료법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비춰진 사람의 모습을 이해하지만 그보다 더 복합적인 접근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구성주의 심리학에서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의 첫 기억이 무엇인가 입니다. 이 질문은, 제가 지난학기 진로상담이라는 과목에서 배운 것입니다. 나의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나를 이해하고자 할때 택할 여러가지 질문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외에 당신이 즐겨보는 잡지는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도 포함되어있지요.
저의 첫 기억은 어스름히 해가 동터오는 시골 언덕에서 엄청나게 울고 있는 모습이에요. 제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지요. 엄마가 동생을 돌보시도록 저는 아마 외갓댁으로 보내졌던 모양이에요. 그날 저는 밤새 울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기억은 던져지듯 택시에 타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모습이에요. 이것은 제가 20개월때의 일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 큰 영향을 준것 같아요. 저는 스무살이 넘을때까지 엄마가 저를 버릴까봐 무서워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보통 동생을 본 첫째 아이들이 겪는 박탈감의 크기를 배우자의 외도와 비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생의 출생현장은 보지 못했고, 다만 그 일이 엄마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에 아마 엄마로부터 버림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그 이후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려면 동생은 잘 돌봐야했고, 그런데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섭고, 그래서 어쩌다 보니 동생에게 의지하는 언니가 되었습니다.
여덟살때 기억은 안나지만 부모님이 저희 삼남매만 두고 할아버지 제사를 가셨어요. 아마 잠들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신듯 한데, 제가 어렴풋이 잠이 깨고 만것이지요. 그때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엉엉 울었습니다. 이 동생들만 나에게 남겨두고 간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너무 울다가 옆집에 할머니께서 와서 우릴 봐주시고 그렇게 그 밤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한 두살 터울의 자매,남매, 형제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큰 애 먼저 보자고 하면 큰 애들은 늘 그렇게 말합니다. "왜 나만 항상 먼저야" 그리곤 울먹거리며 엄마뒤로 숨습니다. 아니면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동생 먼저 보라고 해" 라고 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예방접종 맞으러 왔을때지요. 먼저 맞으라고 하면 그렇게 울고 화를 냅니다. 아,제 얘기에요. 독감맞으러 갈때마다 울었다고 합니다.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찢어저도 주사를 맞아도 끄떡 없는데 말이죠. 겁이 많은 거지요.
근데, 저는 이 친구들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서요. 의젓해지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첫째라고 엄마가 동생들을 돌보라던지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실제로 그 양과 횟수가 많지 않더라도, 동생만 없었으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니 그저 싫을 수도 있겠다 싶은거지요. 저도 겁이 너무 많았지만, 엄마가 동생과 저만 두고 시장을 보러갔을때 문고리를 붙들고 울었지만, 동생은 그런 저를 위로했고, 엄마아빠 제사지내러 가셨을때는 옆집에 초인종을 눌러 도움을 청한것도 동생이었지만, 저는 그렇다고 네가 책임질건 아니잖아의 "억울한"마음이 한켠에는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곤 비교를 당합니다. 요즘은 쌍둥이도 많아서 그 비교가 극한에 달합니다.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도 한 친구는 진료실에서 좀더 당당한 편이고, 다른 친구는 조금 더 움츠러들 수 있거든요. 근데 보호자분이 쟤는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우니 라고 말씀하실때마다 그 말들이 아이에게 우리 생각보다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둘째는 어린데도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언니가 되어서, 큰 애가 겁이 많네, 모범이 되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어른들이 저를 미워서 한말이 아닐텐데도 그 말들은 다 제 삶의 양분이 되어서 저의 몸 어딘가에 붙어있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큰 용기를 내야할때 움찔하게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모험을 할때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다시 그 첫 기억의 장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저는 언덕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어요. 어떻게 해줄까 하고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언덕의 20개월 여자아이를 안아주고 싶어요. 가서 달래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엄마가 너를 버린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어쩐지 병원에 와서 무섭다고 울고 보채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막연히 무섭고 두렵고 그게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인 것 처럼,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해해주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쌓이는 것을요. 그 외로움을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진찰 받기 싫어 몸부림 치다가 한번씩 맞아도 그렇게 섭섭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언덕위의 아이를 위로하고 싶은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돕고싶다는 마음으로 변하여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래서 이 아이가 나를 겁내하고 무서워하는게 덜 섭섭하다면, 그 장면이 이전엔 슬펐지만 이제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첫번째 기억은 무엇인가요? 그 기억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나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