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며 껴안기
코로나 판데믹 시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였다. 그때 나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풍요하거나, 공공 의료 체계가 탄탄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는 경험을 하였다. 더군다나 나는 감염병을 주로 다루는 소아과 의사가 아닌가. 아무리 나를 애워싼 환경을 보호하여도 결국 열이 나는 아이는 코로나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건강문제까지 더해져 어쩔 수 없이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행을 결정한 그 마지막 두달은 처절하기 이를때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오후에 거리에 아무도 다닐 수 없도록 통금을 했고, 통금 선포하기 전날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시장이 오히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격리한 지역의 골목골목은 집이 좁디 좁아 여러 가족들이 골목을 공유하며 사는 마을들로, 그렇게 격리를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백신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자 거주지를 속여가며 줄을 서 맞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치료 시설이 없어서 허망하게 떠나는 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일들이 매일 지속되었다.
아무리 아무일도 없는듯이 집에 들어오고 들어오자마자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바로 샤워를 하고, 그래도 어느날은 진료 보고간 환자가 코로나 양성이라 접촉자로 분류되고 그래서 며칠간 또 검사를 기다려야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수록 이제 곧 내차례구나 하는 걱정이 엄습해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국에 잠시 돌아갈 일정을 받은 어느날도 며칠째 자가 격리중, 사람은 두려움에 문앞을 서성거렸지만, 나를 사람인양 사랑하던 우리집강아지는 두려움따위 없었다. 도대체 왜 엄마에게 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낑낑거리다가 당당하게 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 불만없이 나와 함께 갇혀있어주었다.
그 강아지는 슈나우져, 막둥이였다. 내가 어미의 배에서 나오던날 양막을 찢어주고 그 뒤로는 늘 나만 바라봐주던 지고지순한 강아지 막둥이는 그렇게 내 격리 마지막날 혈뇨를 보고, 소변을 보지 못하였다.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동물병원을 갔으나, 거리 통제 상황으로 수술을 할 수 없으니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요로 결석이고 이렇게 지속되다간 신부전이 와서 사망할수 있으니 어서 수술을 하는게 좋겠다는 소견이었다. 통금시간이 얼마 안남았고,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막둥이를 싣고 병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수술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하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근처에 숙소를 잡아 아침에 보기로 하고 나왔다.
내가 우겨 회복실에 있어야했나, 그렇게 하기엔 너무 민폐였고, 알아서 잘 해주실거라 믿었다. 아니, 거기에서 내가 남아있겠다고 하면 그건 진상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 진상이라고 생각한 그 점잖은 생각이 문제였을까, 막둥이는 내가 아침인사를 가려고 기다리던 그 시간에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겨우 화장만하고 비행기표와 검사까지 모든 수속을 마쳤던 강아지는 작은 항아리에 안겨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우린 한국에서 가져왔던 가구들과 짐들도 다 버린채 도망자처럼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날들의 기억이 고통스러워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최근엔 그리워졌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일을 만들고 돌아왔다. 정말 딱 2년만이다.
숙소는 우리가 살던 아파트옆 레지던스다. 아파트와 구조와 분위기가 비슷해서 꽤나 예전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도착한지 48시간이 어느 시점에 문득, 숨을 쉬지 못할정도의 무거움이 가슴을 조여왔다.
"내가 너를 여기에 두고 갔구나. 막둥아. "
한동한 잊고 지낸 그 모습이 그대로, 표정과 냄세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게 정확히 막둥이에 대한 그리움인지, 처절했던 우리에 대한 안쓰러움인지, 아니면 해질녁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그리워했던 그 적막함과 외로움에대한 애도인지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어제 저녁 산책길에 아이들이 뛰어널고 웃는소리, 바쁘게 고속도로위를 차들이 다니는 소리, 배달 기사들이 경적 울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이곳이 이랬었지, 반갑다 생각했다.
코로나에 대한 기억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즐거울리가 없다. 우린 많은 것을 잃었다.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최악의 모습을 보고, 최선의 모습도 보았으니까.
그 기억이 상실과 맞물려 감정이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간다.
상실은 나에게 어려운 문제다. 당장의 상실은 슬픔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되고 길고 깊은 그리움이 남아있다. 본능적으로 그 그리움이 무겁고 긴 것임을 알기에 나는 슬픔을 간소화한다. 오래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가끔 그리움이 너무 많이 쌓이는 날에는 그때 못다 쓴 슬픔을 퍼나른다. 이 슬픔이 올라오는 날엔 아주 깊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오래묵은 감정들이 혀끝에 맴도는 기분이 든다. 어떨땐 그냥 펑펑울고, 어떨땐 멍하니 앉아있고, 오늘은 글을 쓴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가 나의 소중한 강아지, 내 강아지야. 너무 그리워서 평소에 그립단 말조차 아끼는데, 문득, 여기오니 내가 그때 너무 슬퍼서 널 사랑하는 마음을 여기에 놓고간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막둥아, 엄마왔어. 이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