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자주 아픈이유 ,면역부채
소아청소년과는 여름이 일년 중에 제일 한가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7월에 봤던 환자가 3월에 본 환자보다 많았습니다. 저희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 수개월째 약을 먹고 있다는 아이들일 부지기 수입니다. 제가 기존에 보던 아이들 중에도 끊었다가 다시 먹기를 반복하는 친구들이 많지요. 저도 너무 고민이 많았습니다.
수족구와 같은 엔테로 바이러스 계열의 질환들은 보통 한창 더운 7-8월엔 없어집니다. 오히려 아데노나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 같은, 정말 순수하게 열만나고 편도만 붓는 감기가 조금 있을 뿐입니다.
지난중 감염 감시 보고에서 감시 환자의 25%의 환자에서 아데노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물론, 그냥 제가 봐도 아데노 바이러스에요. 근데 문제는 아데노 바이러스가 뭐 대단히 엄청난 바이러스냐 그건 아니고, 5년전 제 페북에도 4-5월엔 아데노 바이러스 뿌시고 싶다는 글이 늘 있을 정도로 흔하고, 그러나 너무 사람을 괴롭게 하는 못된 감기 바이러스 입니다.
감염성 질환은 질환이 발생함에 따라 일정비율로 심각한 환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엔테로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는 수족구가 창궐하는 시기에 EV71 이라는 주로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같이 돌게 되면 무균성 뇌수막염으로 아이들이 입원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심각한 후유증이나 안좋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도 합니다. 즉, 어떤 감염이 돈다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존재하느냐에 따라 중증 합병증의 환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물론, 에볼라처럼 걸렸다 하면 바로 중증이되는 그런 바이러스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감기 얘기하는 거잖아요, 감기. 에헴.
그래서 유독 올해는 "우리 애가 면역이 약한가요" 하고 물으시는 부모님들이 많으셨습니다. 걔중에는 이제 만 3살이 되었고 어린이집을 다닌적이 없다가 올해부터 다닌 아이들이 있지요. 사실, 이아이들은 뭐, 당연히 감기를 많이 걸릴만 합니다. 지난 3년간 집에만 있느라고 감기에 걸린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면역이 형성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3살짜리 아가들만 많이 아팠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3살짜리 형님의 동생도 오랫동안 아프고, 그 누나도 오랫동안 아팠습니다. 심지어 이제 엄마 아빠들도 애들한테 감기를 옮아와서 기침을 달고 삽니다.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지역사회 내에 그동안 감염성 질환이 돌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사회 내의 집단 면역이 사라진 탓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큰일이 난 것 같은데, 위에 말씀 드린 아데노 바이러스의 경우에도 예년에도 그 전에도 아데노 바이러스는 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인후두염, 기관지염, 폐렴, 중이염, 장염에 결막염까지 가지고 오는 경우는, 그것도 거의 모든 환자들이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거든요. 한 바이러스의 여러 서브 타입에 대하여 지역사회 내에 일정비율의 아이와 부모들이 면역성을 가지고 있다면 감염병은 돌다가 어느 순간 사슬을 잃어버려 명을 다하게 됩니다. 하지만 옆자리로 옮길때마다 활활 타오르는 바짝 마른 장작이 있다면 그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요. 문제는 이런 바이러스가 아데노 안에서도 여러가지 일 뿐더러, 수족구에서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 소도시에서 소아과를 하고 있는 제가 경험한 수족구와 헤르프 안지나의 서브타입만 5가지가 넘습니다.
우리는 면역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빚지고 있습니다. 즉, 누군가가 감기에 걸렸던 적이 많기에 나는 안걸리기도 한다는 겁니다. 신생아가 태어나기전에 백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족들 모두가 백일해 접종을 맞도록 권유하는 것이 비슷한 방법이지요. 이것을 코쿤 스트레티지 Cocoon Strategy라고 해요. 아이 주변에 면역 있는 사람들로 싸서 아이를 마치 누에의 고치안에 보호하는 것처럼 막아주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현상은 작년부터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여름 방학이 되어도 끊임없이 폐렴에 걸리더라고요. 왜 그러지?? 점차 코로나 판데믹의 기새가 약해지면서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시점 부터 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올해는 그렇겠지만, 내년엔 괜찮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3년치를 올해 몰아서 아프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요.
두번째는 날씨의 문제입니다. 올해는 유독 라니냐 현상때문에 7-8월의 기온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기온이 겨울처럼 낮은 것은 아니었지요. 날씨가 마치 베트남의 우기같았어요. 베트남, 싱가폴, 필리핀 같은 지방은 남반구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염성 질환의 유행이 남반구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독감 예방접종을 시작하도록 권고하는 시기가 매해 4-5월이에요.
그동안 북반구에 살고 있는 과학자들은 겨울에 감기가 많이 걸리는 현상에 대해서 환기가 제대로 안되었다거나, 밀집된 곳에 인구가 많이 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여름엔 해가 많아서 면역력이 좋지만, 겨울에는 해가 짧으니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이 더하다고 생각했지요(틀린말은 아님).
하지만 세상은 넓고 남반구와 열대 지역에도 사람은 사니까요. 일부 과학자들은 이것을 절대 습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절대 습도는 수분이 기압을 이기고 기화되는 압력을 말합니다. 이 과학자들은 이렇게 기화되는 압력이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힘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실제로 베트남 등의 지역에서 절대습도가 높아질때 RS 바이러스 (겨울에 많이 도는 바이러스)의 감염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올해는 6-7월에도 한 겨울에나 돌 법한 RS바이러스,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돌았습니다. 심지어 독감이유행을 하기도 했어요. 이때 날씨는 겨울처럼 춥지도 않았고, 햇빛이 넉넉했으며, 사람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실내 생활만 하지도 않았습니다. 상대적인 추위가 감기를 만든 것이라면 겨울 감기가 아니라 봄에 도는 바이러스가 유행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겨울에 도는 감기가 돈다는게 이상했어요.
라이노 바이러스처럼 비교적 순한(?) 감기 바이러스들도 이런 못된 바이러스들과 함께 감염이 되면 시너지를 발휘하여 사람을 엄청 힘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폐렴으로 입원한 친구들 바이러스 검사한것 보면 기본은 3개가 나오더라고요.
올해만 라니냐 때문에 추운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날씨가 점점 아열대로 바뀌어 우기와 건기로 바뀔런지는 잘 모르곘지만, 확실한건 올해는 날씨 때문에 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다가 뎅기 바이러스 감염 걱정하게 될 날이 올까봐 걱정되요.ㅠㅠ
이런저런 이유들로 감기가 폭팔적으로 증가하다보니, 어떤 아이들은 폐렴도 많고 어떤 아이들은 상악동염도 생기고요. 중이염이 떨어질 날이 없는 친구도 있을 거에요. 그저 전체적으로 감기 걸린 사람이 많아지니, 더 심하게 아픈 사람들의 수가 증가해서 그런 것이랍니다. 그래, 내년에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덜 아프면 우리 아이도 기관지염 덜 걸리고, 중이염도 덜 걸릴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엄마 아빠들 힘내세요. 우리 아이가 요즘 많이 아픈건 세상이 많이 아파서 그런건데요. 내년엔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