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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운 Mar 10. 2024

완결이라면서

두 편 더


이 브런치북의 1화를 써 올렸을 때가 2월 넷째 주 일요일이었고, 며칠 후 그 주 평일에 나는 정신과에 첫 진료 예약을 잡았다.



남편과 싸워서 기분이 무척 좋지 않은 채로, 친한 지인과 잠깐 만났는데 이러이러해서 싸웠다고 하소연하다가 내가 지나가는 말로, 남편이랑 사이가 심하게 안 좋을 땐 내가 죽으면 어떨까, 남편이 죽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들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인분이 그런 생각까지 드냐고 하며 놀라는 반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는데 놀라기에 나도 약간 놀라서 묻지도 않은 얘기를 더 했다. 나는 몇 년 전엔 실제로 횡단보도를 기다리다가 여기서 한 발 앞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잠깐 멍하니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되긴, 가족들이며 친구들이며 사고당한 차량까지 평생 충격이겠지) 그땐 그 정도로 심각한 마음 상태였던 것 같다. 그 시기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려 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날 막아섰었다. 그것을 계기로 부부 상담도 한 번 가봤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남편도 비협조적인 태도라 별로였다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상담이었다고 말하자, 본인이 과거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었다며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게 보통의 생각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조심스레 우울증일 수도 있다며 병원을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병원은 상담 센터만큼 비용이 들지 않아서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본인은 지금 병원도 약도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그 말을 듣고 난생처음 내가 우울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말도 많고 웃음도 많고 시끌벅적한 것도 좋아했던 터라, 뻔한 말이지만 우울증은 나랑 상관없는 무언가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왠지 당장 병원에 달려가보고 싶었다. 내 마음을, 우리 부부의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 것인지 단지 뭐라도 시도해 볼 게 생겨서 좋았던 것인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지만 얘기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 내내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남편이 나에게 막대하고 막말했던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데 정말 상담한다고, 약을 먹는다고, 효과가 있을까? 안 좋은 기억은 계속 남아 있을 텐데도 괜찮아질 수가 있을까?



그래도 일단은 해보자는 생각에, 지인과 헤어지고 바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병원이었다. 최대한 빨리 방문하고 싶었으나, 가장 빠르게 방문 가능한 날짜가 3월 넷째 주였다. 딱 한 달 기다려야 되는 거다.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예약을 마치고 며칠 후, 이 브런치북 (세미) 완결을 내면서 또 한 번 희망을 봤다. 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몇 년 치의 모든 사건과 상처를 일일이 책으로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걸 또 이만큼 많은 분들이 봐주셔야 ’괜히 미안함‘으로 상처를 덮을 수 있을 텐데, 그리 될 거란 보장이 없으니 이번엔 병원에 조금 의지해 보고 싶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 직전에 매거진에 아래와 같은 글을 쓰며 내가 진짜 필요한 사람, 가치 있는 사람 같이 느껴진다고 써놓고


https://brunch.co.kr/@4aceda3f0ce9481/10


우울증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지만 그게 어이없게도 나의 삶이다. 원래 인간이란 복잡하고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겠나 싶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정에서의 나는,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사람이지만 사회에서의 나는 없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그런가. 남편의 심한 (내 기준에서) 감정기복에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 둘째가 말을 잘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둘이 싸우는 빈도가 늘고 강도가 세지는 바람에 싸움을 말리는 데 지쳐서 그런가. 첫째 아이가 가끔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참다 참다 끝내 화를 내고서는 밤에 잠든 아이들을 보며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던 날들이 쌓여서 그런가.



한 가지 확실한 건, 격한 우울감의 시작점은 ‘남편과의 불화’라는 것이다. 남편과 싸웠거나 냉전 상태 거나 남편이 사소하게 서운하게만 해도, 안 좋았던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아이들에 관한 힘든 현실까지 나를 덮쳐오면서 울기만 한다는 거다. 지금도 잠든 아이들 옆에서 글을 쓰며 울 뻔했다.



우울증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병원에 다녀온 이후의 이야기도 쓸 예정이다. 의사 선생님이 도와주실 수 있든 없든 결국 내가 가장 노력하고 사랑해야 할, 나의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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