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 더
나는 요즘 남편과 사이가 좋다.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그저 좋지만은 않은 것이, 참 뒤숭숭하다.
나의 지난 글들을 다시 읽다 보면 화가 나다가도 후련해지고는 하지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보게 될 때면 ‘나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나’ 씁쓸해지기도 한다. 나의 선택도 틀린 건 아니라고 되뇌어 봐도, 얄팍한 정신승리같이 느껴져 괴로울 때가 있다. 나와는 다른 결정을 한 분들의 사연이 새롭게 촉발시킨 감정은 아니다. (멀리서 글 몇 자 읽고서 누가 좋다, 뭐가 낫다 판단하면 안 될 일이니까.) 내가 원래 해오던 생각을 한 번 더 하면서, 원래 느끼던 감정을 한 번 더 느끼는 것뿐이다.
부부 사이가 나쁠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매번, ‘같이 왜 사나’를 생각한다. 그런데 사이가 좋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면 혼란스럽다. 겉으로는 마주 보고 신나게 웃는 것 같아 보여도 나 혼자 속으로는 뭔가 (성매매 때문만은 아닌데) 켕기고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겉과 속이 다른 나의 모습이 내가 봐도 음침한데, 남편이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럴 거였으면, 좋은 날마저도 안 좋은 날이 있을 거였으면, 왜 이런저런 고비를 넘기면서 같이 살기로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잊은 척, 괜찮은 척, 아주 가끔씩만 상처들이 아파오는 척,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지내면 안 되는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으면서 머릿속만 시끄럽다. 그래도 글을 쓰면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고 생각이나 감정이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해서 일단 쓰는 중인데, 아직 갈길이 먼 듯하다.
남편에겐 내일 신경정신과에 예약해 두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몰래 다녀올 생각이다. 우울증이 의심되는 이유를 제대로 둘러대지 못해서, 연기가 부족해서, 얘기하다가 (남편을 탓하는) 내 진심을 털어놓기라도 해 버리면 남편이 길길이 날뛸 것 같아서. 자기가 여태 뼈 빠져라 벌어 먹였더니 뒤통수친다고 할까 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닐 수도 있다. 화내는 대신 진심 어린 걱정을 해줄 수도 있다. 병원까지 친히 태워다 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하면 비밀로 할 것이다.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타입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기분 상하는 모습도 많이 봐서, 이건 말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이 브런치북을 남편에게 보여줄 날도 올까? (브밍아웃...) 상상도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