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색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
35살이 되면서 삶의 색깔이 점점 퇴색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마치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는 듯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은 지루함의 극치를 달렸고, 긴 코로나 기간 동안 연애마저 끝나버린 내 삶은 무의미한 공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안정적이라 믿어왔던 일상조차 이제는 나를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졌다.
임용 공부는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았다. 강의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도, 책을 펼치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희망의 불씨가 점점 꺼져가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마치 끝난 연애의 잔해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었다.
이런 무료한 시간 속에서 나는 도파민이 솟구치는 뭔가를 찾고 싶었다. 삶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무엇 하나 내 마음을 꽉 잡아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언니, 스윙댄스를 한번 배워봐. 주말에 나갈 곳도 생길 거야.”
춤? 지금 내가 춤을 춰야 하는 건가? 낯선 세계로의 초대는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스윙댄스를 배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머글에서 댄서로: 스윙의 세계에 들어가다
스윙댄스에서는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을 ‘머글’이라 부른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없고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며, 그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스윙댄스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또 하나의 언어였다. 이 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세계의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목요일에 정기 모임이 있는데, 한 번 와볼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D군의 제안에 무심코 “그래, 가볼게”라고 답한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 말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파트너를 찾아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발놀림과 환한 표정을 보며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일까?’
그날 저녁,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나도 이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그렇게 나는 초급반 지터벅 강습을 등록했다.
첫 수업: 몸으로 배우는 즐거움
지터벅은 초보자를 위한 스윙댄스의 기본 과정이었다. ‘스텝 스텝 락 스텝’이라는 6박자의 리듬에 맞춰 기본 동작을 익히는 것이 첫 수업의 목표였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걸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발이 꼬여서 넘어지지는 않을까?’ 불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날, 나를 스윙의 세계로 초대한 D군이 손을 내밀었다.
“저 오늘 배운 게 별로 없는데 춤을 출 수 있을까요?”
“한 번 해보죠.”
그렇게 시작된 3분간의 춤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 3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 순간이 너무 신기하고 짜릿했다. ‘그래, 지터벅이라도 제대로 배워보자.’ 그렇게 나는 다음 수업을 기대하게 되었다.
춤에 빠져들다: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
물론 다음 주에도 나는 여전히 스텝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 하지만 다양한 동작을 배우고, 그것을 음악에 맞춰 출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더 흥미로웠다.
목요일 정기 모임에도 참석해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D군이 놀라며 말했다.
“오, 금방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나오고 있었어!” “두 달은 한다고 약속했잖아. 일단 지터벅은 끝내 보는 걸로.”
강습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도전이 계속됐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바로 ‘찰스턴’이라는 동작을 배울 때였다. 기존의 6카운트에서 8카운트로 바뀌고, 리더가 갑자기 내 뒤로 이동하는 동작이었다. 스텝을 밟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파트너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발을 밟을까 걱정돼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파트너와 호흡이 맞는 느낌을 경험하면서, 춤이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대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며,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졸업 공연: 무대 위의 또 다른 나
지터벅 과정을 마무리하며 졸업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는 큰 부담이었지만, 연습을 거듭하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공연 당일, 나는 무대 위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음악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연습했던 동작들을 차례로 펼쳐 나갔다. 예상치 못한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의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가 터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공연중간에 틀린 부분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 남들 앞에서 춤이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췄는데, 틀렸다는 점이 아쉽긴 했다. 물론 지금은 중간중간에 틀리더라도 ‘그럴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속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에는 틀리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안무를 외우고, 안무를 직접 짜보는 것도 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 스윙댄스가 내 삶에 남긴 것
스윙댄스를 시작한 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머글’이 아니었다. 춤을 추며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함께 호흡하는 과정에서 삶의 색깔이 되찾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댄서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춤’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이 흐르면, 나는 스텝을 밟고, 내 몸을 리듬에 맡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안다. 스윙댄스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빛나게 만든 특별한 여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