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의 연애기간에는 싸움 한 번을 하지 않고 재미있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잘 지냈는데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툼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번째 다툼은 결혼식장 선정 문제 때문이었다. 시댁에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자 하셨다. 시댁은 기독교집안으로 아버님은 장로님, 어머님은 권사님이셨다. 어머님께서 남편이 나와 교제한다는 이야길 들으시고 나에 대한 첫 물음이 "믿음생활을 하냐?" 였었다. 조건중 제일 중요한 게 종교란 이야기를 남편을 통해 전해 듣고 사람보다 종교를 더 중요시하신다는 것에 좀 서운했다. 나는 미션스쿨을 다녀서 중학교부터 교회는 나갔지만 보수적인 내 성격으로 주일에 교회를 통해 남녀가 만나는 장소가 되는 것이 별로라는 생각에 안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시어머님 되실 분의 말씀을 듣고 연애시기 다시 교회 다니며 세례를 받았었다. 하지만 나도 당시 친구들이 예쁜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하는 걸 보고 조명에 웨딩드레스기 빛나는 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었다. 그리고 종교가 없으셨던 우리 부모님께서 시댁이 다니는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것에 불편하실 것 같아서 교회보다는 다른 곳에서 했으면 했다. 그 시기 시아버님 출판기념식을 하실 계획이 있으셔서 시아버님은 차라리 예술의 전당에서 출판기념식과 같이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교회를 고수하셨다.
나의 친정은 자식들이 부모님들께 의견을 편하게 이야기하고 자식들의 결정을 지지해 주시는 편이었는데 남편의 경우 부모님의 의견에 순종하는 편이라 의견 충돌이 생긴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예식을 하고 친구들은 해외로 여행을 가는데 나는 남편 누나가 결혼식 선물로 준 제주도 호텔도 아닌 콘도형식의 숙박시설로 신혼여행을 가서 속이 좀 상했다. 지금생각하면 아버님 암수술로 빨리 결혼식을 올리게 된 상황으로 29세였던 남편이 군대 다녀와 자리 잡은 상태가 아니라 부모님의 도움으로 결혼해야 했기에 더욱 자기주장을 못했던 것 같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평생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 신혼여행이라 그냥 따라주긴 쉽지 않은 것이 다툼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우리 부부의 다툼 중 큰 부분은 시댁문제였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라 둘만의 문제라도 만으로도 부딪힐 여지가 많다. 거기에 양가의 문제까지 더해지면 새로 만들어진 가정은 위기의 골짜기로 빠지기 쉽다. 여기에서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린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결혼 전에나 부모한테 잘해라 결혼을 하게 되면 네가 선택한 현명한 아내말을 잘 들어줘라" 이 말은 경험을 통한 나의 부모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