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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소미 Oct 24. 2024

5. 신혼

  내가 결혼하던 1993년 당시에는 신랑 쪽에서 전셋집을 얻고 신부 쪽에서 그 집안에 살림을 채워 넣는 분위기였다. 시댁에서는 방배동에 살고 있는 집 외에는 아버님께서 청렴한 공직자 셨기에 가지고 있는 현금이 많지 않아 결혼식 때 받은 부조금을 이용해 신혼집을 얻어주신 듯싶었다. 얻어주신 신혼집은 흑석동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삼천만 원짜리 다가구 전셋집이었다. 허니문 베이비를 임신해 퇴근해서 집에 가려고 오르던 고지대 집의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토하면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신혼집에 결혼 전 사용하던 피아노부터 이태리 하이그로시 장롱, 유행하던 턴테이블 오디오 티브이 세트등으로 채웠다. 나는 당시 활황이었던 증권회사에 근무했어서 나 스스로 돈을 모아 결혼비용을 다 마련하고 우리 사주를 팔아 사업에 실패하시며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 집을 사드리고 시집을 왔다.


   시집오기 전 힐튼호텔 커피숖에서 상견례를 할 때 우리 아버지께서 시댁어른들에게 시집보내기 아까운 딸이라고 말씀하셨다. 신혼집주인아주머니께서 내가 신혼살림을 해온 걸 보시고 "정말 신혼살림 잘해왔다 자기 딸은 저렇게 해서 시집보낼 수 없을 것 같다"라며 부러워하셨다. 결혼한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기에 나의 집들이 초대에 온 친구들이 너무 높은 달동네 다세대에 찾아오게 해서 조금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젊기에 뭐든 해서 잘 살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서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었고 신혼시작 시 행복했다. 결혼을 결정할 때 남편하나만을 보고 남편의 어떤 조건도 신경 안 쓰고 결혼했기 때문이다. 일 년 정도 신혼생활을 즐기고 기반을 잡고 아이를 갖고 싶었는데 결혼하자마자 생긴 첫아이로 나의 생활은 더 달라졌다. 신혼부부들에게 1년 정도 둘만의 신혼을 보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맞벌이에 허니문베이비에 쉬는 날은 시댁식구들과 교회에서 보내고 월요일 출근은 이제까지 내가 선택해서 만족하고 살았던 결혼 전의 나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덧이 시작돼서 더 힘들어졌고 남편은 늘 바빴다. 물리학을 전공한 편은 군대 다녀와서 졸업 후 대학원까지 가야 하는 학문의 길을 아버님 병환으로 포기하고 가정을 이룬 상태이므로 물리학 전공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남편의 현실도 녹녹하진 않았을 거다. 임신해서 후반기에 아버님 위암 증세가 심해지셔서 흑석동집을 비워두고 방배동 시댁에서 시부모니이랑 큰집이랑 생활하라고 하셨다.


  그 시기 비어있던 흑석동 신혼집에 남편친구가 나한테 허락도 없이 거주하고 있었던 일, 신혼인데 신혼집에 남편이 남자친구인 본인 친구와 나랑 둘이 놔두고 남편은 밤늦게까지 회식하고 오던 일, 그 친구를 신혼 초에 집에 데려와 저녁먹이고 재워주면 자고 같이 나갔다가 내가 뭐라고 할 때까지 본인 출장까지 매일 데리고 다니며 같이 퇴근해서 반복적으로 집에 데리고 오던 일등등이 남편의 다툼원인제공 행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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