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6살까지 누워 지내면서도 쓴 약을 소리 없이 잘 먹던 순한 아들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복수가 차서 대학병원에서 살 수 없다고 했는데 간호사일을 하셨던 어머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약 저 약다 먹여 살렸단 이야기를 하셨다.
공직생활에 박봉이신 아버님을 대신해 사회활동하셨던 어머니가 아버님께 운전기사를 채용해 주실 만큼 사업에 성공해서 집안살림이 나아져 시골에 있던 양가친척들을 불러 자리 잡게 해주셨다고 한다. 사기를 당해 가세가 기울었지만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어머니를 대신해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큰누나가 남편을 키웠다시피 했다고 한다. 캐나다에 갔을 때 내가 큰 누나에게 시댁과의 일을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누나가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남편이 삶을 잘 영위하길 늘 바라는데 바쁜 부모님 빈자리에 본인도 어렸던 때, 자신의 보살핌이 착한 동생의 삶에 혹여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고 하셨다. 막내인 남편이 어리고 아픈 상태여서 다른 형제보다 자랄 때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환경의 영향으로 남편이 가출도하고 담배도 피워 어머니 눈에 눈물 흘리게 만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은 위트가 있는 편이고 연애시기 친구들과 같이 만나 이야기할 때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결론을 내려주는,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도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이과적 스타일이었다. 나도 잘 들어주는 편이라 남편이 처음으로 대화가 잘 통하는 나와 만나서 연예할 때 좋았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은 외모가 좋은 편이다. 나랑 사귈 때도 인턴여직원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남편에게 여자 친구가 없는 줄 알고 책상서랍에 쪽지도 넣어놓고 가고 했다고 들었다. 회사동료들도 실제 모델들이 남편처럼 생겼겠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하얗고 훤칠해서 인기가 많았다. 남편 친구들도 나에게 남편은 여자들이 보면 다 좋아하는데 정작 남편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의 친구들도 남편을 다 좋아했다. 내가 남편 때문에 속상할 때 성인된 내 딸은 "엄만 아빠인물 보고 만나서 망했잖아'"하고 농담하며 내편을 들어준다.
처음 만남에서 볼 수 있는 건 외모이니 남편의 잘생긴 외모가 플러스 요인이긴 했어도 진정성 있는 마음과 신뢰 가는 목소리, 착함이 우러나는 좋은 인상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속직함이 좋았다. 남편은 나에게 숨기는 게 없었다. 시아버지가 본인도 결혼할 때까지 몰랐던 실수로 생긴 딸이 있다는 걸 결혼 후에 알게 되어 시어머니가 이복인 큰 누나를 거둬 다른 자식들과 같이 키우셨다고 한다. 남편형제들이 성장하고 나서 친척어른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그 사실을 듣고 형제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서로 비밀이 없던 우리 사이였기에 남편은 그 이야기를 나에게 말해주었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우리보다 꽤 오래된 형과 누나는 자신의 배우자들에게 말을 하지 않은 상태였었다. 나만 알고 있던 상황에서 외부요인으로 가족의 나름 비밀이 어쩔 수 없이 오픈된 상황 생겼다. 큰누나는 본인 배우자에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형과 작은 누나는 본인들은 배우자에게 비밀로 했던걸 남편 은 나에게 솔직했다는 사실이, 부부로서 당연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마치 가족의 비밀을 남한테 말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남편 입장이 걱정이 되었었다. 또한, 본인 형과 누나의 행동을 보고 ' 배우자에게 모든 걸 다 말하는 것이 아니구나!' 리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후에 나와 비밀이 어떤 생길까 봐 염려도 되었다. 나도 모든 것을 다 숨김없이 남편에게 말하는 편이라 형과 누나가 본인 배우자에게 이야기 안 해줬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됐고, 나에게 이야기해 준 남편의 태도에 배우자로서 너무 고마웠고 신뢰가 더 갔다.
시아버님은 우리나라에 큰 획을 긋는 많은 일을 하신 고위 공무원이시고 청렴하신 분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시아버지께 뇌물로 돈가방을 들고 오면 그걸 던져버리셔서 돈이 날아다닌 것도 보았다고 하며 남편은 아버지를 국가적으로 존경하지만 아버지로서는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을 결혼 전에 했었다. 가정의 경제가 어려웠을 때 원망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자랑보다는 약점이라 보일 수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남편이 믿음이 갔고 좋았다. 생활력과 끈기도 있어서 어려서부터 자라는 모습을 본 주위 친척분들과 어머니가 남편은 리어카 하나만 있으면 어떤 사업이든 성공할 사람이라고 말씀들 하셨다.
인상이 좋은 남편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사람들은 남편에게 호의를 갖는다. 그래서 가끔 나와 편이 나뉠 때는 사람들이 내편보다 남편 편이 되어 내가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아파트 엄마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던 게 떠오른다. 그곳에 이사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떤 엄마가 사람들에게 "제니엄마(나) 괜찮지? 그런데 제니 아빠 봤어? 더 멋있다 "라고 이야기해서 이게 칭찬인가? 기분 나쁜 말인가? 순간 헛갈린 적도 있었다.
착하고 인상 좋은 남편이었기에 남편 사귀는 중에도 의사에서부터 조건 좋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 했는데도 조건에는 전혀 관심 없고 사람하나만을 볼 수 있었다. 결혼 이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결혼 생활이 사랑 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보지 않았던 남편의 갖춰져 있던 조건들에 도움을 받으면서 사랑이 결혼생활의 전부는 아닐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랑만 가지고 결혼했는데 너무 어려운 경제 환경들에 맞닥뜨리면 이겨낼 수 없는 부분도 있겠구나, 하나님이 돌봐주셔서 남편이 내가 안 본 조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네!, 연애도 못했던 내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게 하나님 은혜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다. 대학 때 심마니친구와 산에서 심마니생활도하고 독실한 기독교집안의 자녀로 절에서 살며 공부하고 스님과 절친으로 지냈다. 혼란한 우리 시대에 대모에도 참석하고,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저 정도면 그만두겠지"소리 들으면서도 산골을 지나는 무서운 길을 혼자 다니며 신문배달을 오래 한 경험을 비탕으로 한 공사판의 막일 생활로 대학생활비를 충당을 했다.
어떤 부분은 전혀 신경 안 쓰는 성향과 고집도 있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 미리 계획하고 신경 쓰고 나오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데이트하러 나오는 단점이 여기에 속한다. 나는 서울에서만 살아서 서울 남자들이 대부분 여자들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한 모습을 봐왔기에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의 큰 이벤트를 챙겨주지 않아도 한결같음이 더 매력으로 느껴졌었다.
남편은 옷도 머리도 신경 안 쓴다 패션감각이 없으니 옷에 대한 욕심도 없다. 신기술에 관심도 없다. 요즘시대에도 핸드폰 성능에 관심 없어 3D 폰을 찾고, 넥플릭스 유튜브에도 관심이 없다. 다행히 울아들은 남편이 갖지 못한 재즈감성, 패션관심, 첨단산업과 정보에 능하다. 아빠보다 나은 아들이 나왔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