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같은반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그 친구가 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정말 교회 꼭 다녀야돼."
"왜?"
"교회 안가면... 너 지옥가."
그때 그 아이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그 친구 눈에 나는 아마 불구덩이 앞에서 천지분간 못하고 서있는 안타까운 존재였나보다. 걱정가득한 표정의 그 친구에게 나는 반대로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넌 지옥가는게 무서워서 교회가는 거야?"
친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 응"
말 잘듣는 사람은 천국에 데리고 가고 말 안듣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트린다는 그 친구의 신은 우리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나는 상벌이 뚜렷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잘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벌을 받았다. 비율은 99대 1정도. 물론 벌 받는 것이 99 다.
칭찬은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달성했을 때만 얻을 수 있었다. 성적은 반에서 1등 정도, 성격은 어른처럼 점잖으며 배려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똑소리 나게 야무져야했다. 투정도 하면 안되고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완벽해야 칭찬을 받았는데, 태어나서 두번정도 칭찬받은것 같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성격도 점잖치 못했다. 그저 호기심 많고 활달한 보통의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늘 혼이나곤 했다.
이렇게 상벌을 주며 키워야 아이가 바르게 자란다고 믿는 부모님들이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처음에는 부모 말을 잘듣는 아이로, 키우기 수월한 아이로 자랄지도 모른다. 아이가 벌을 받지 않기위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걸린 사랑을 받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세상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서서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행복의 기준이 밖에 있기에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수 없다.
엄마의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인지 나는 늘 자격미달인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나를 잘 키우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했겠지만 나는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엄마가 나를 못마땅해하고 한숨을 쉬고 째려보고 매를 들때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받아보려고 애쓰며살다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눈치는 참 빨라졌다.
낳아준 부모조차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다고 느끼는 아이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나는 못난이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대접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은 참으로 가난하다.
우린 이미 온갖 조건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있다. 실수로 내뱉은 말 한마디에 절교를 당하고, 매출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 수 없는 세상을 산다. 그런 풍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무엇일까? 힘든 상황에도 자기 만큼은 스스로를 버리지 않고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마음 아닐까?
'실수해도 괜찮아.'
'누구나 그럴수 있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거야.'
'그럼에도 나는 좋은사람이야.'
라고 해줄수 있는 무조건적인 자기 사랑이 아닐까?
이렇게 조건없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풍파에서도 살아남아 다음 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바탕이 된다.
당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당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눈물이 찔끔나도록 질책을 받고 싶은가? 아니면 수고했다고. 괜찮다고. 다독여 주길 바라는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존재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조건없는 사랑이다. 나는 이것이 아이를 키울때 바라보고 가야하는 단 하나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있으면 아이는 잘못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만 있으면 당신도 잘못될 수 없다.
사실 나도 수도없이 조건걸린 사랑을 했음을 고백한다. 이러면 엄마가 힘들다고 타박하고 찡그렸다. 친구들은 다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내면 오히려 더 분노했다. 그럼에도 늘 나의 목표는 조건없는 사랑이었다.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그저 그 노력을 한것만으로 아이는 이렇게 빛나게 컸다. 잘 못해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침반이 있는 배는 돌아갈지언정 길을 잃지는 않는다. 최단거리 직선으로 돌파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손에 '조건없는 사랑' 이라는 나침반을 하나 쥐고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