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처음으로 "사랑해" 라고 말하던 순간 이 떠오릅니다. 이 작은 꼬물이를 앞에두고 처음 그 말을 하려는데 얼마나 어색하던지요. 남편에게는 참 많이도 했던 말인데 막상 내 아이에게 하려니 전혀 다른 말처럼 느껴졌어요.
이렇게 덜덜 떨며, 이를 악물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해' 라고 말하는게 맞는걸까? 그 말이 가식처럼 느껴졌어요. 아이를 속이는것 같았지요.
그럼에도 나는 엄마에게 단 한번도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아이에게는 꼭 해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너무 작아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아무 대답도 할수 없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됐어요. 설마 이 조그만 아기가 "거짓말 하지마! 이 위선자!" 라고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 사...랑.해."
다행히도 아기는 까만눈을 깜빡 깜빡하며 가만히 저를 쳐다만 봤지요.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꼬물거리는 아가에게 사랑한다고 서툰 고백을 했답니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째는 조금 쉽고 세번째는 더 쉽더라구요. 나중에는 버튼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 마냥 '사랑해' 소리가 입에서 자동으로 술술~ 나오게 되었어요. '가식이면 뭐 어떠냐~ 철판 깔자~' 하는 맘이었네요. 신기한건 그렇게 자꾸 말하다보니 사랑한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사랑이 처음부터 평온하고 반짝반짝하고 따스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제 사랑의 시작은 애씀이었고 인내였고 내면의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는 막막함이었어요. 하지만 완벽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고 사랑을 속삭일 권리조차 없는건 아니잖아요. 우리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기로 해요. 사랑하고자 하는 노력도 사랑이니까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도 사랑이 있다는거 아시나요? 숙제를 하지 않고 계속 딴짓을 하는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도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이 있어요.
아이가 선생님께 사랑 받았으면 하는 마음
혼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자신이 무엇이든 해낼수 있음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두려움과 분노의 말 대신, 걱정의 뒷면에 작은 사랑을 찾아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엄마는 네가 선생님께 혼날까봐 걱정돼. 엄마는 네가 사랑 받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모든 언어는 이렇게 한꺼풀만 벗기면 사랑고백이 된답니다. 한꺼풀 벗기는데 연습과 용기가 필요하기는 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귀를 닫아버리거나 도망가지 않아요. 공격받지 않으니 방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지요. 가끔은 아이가 정말 멋진 말을 해주기도 한답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혼내거나 미워하지 않아.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예쁨받지 않아도 괜찮아."
숙제 안해왔다고 무섭게 노려보고 차갑게 버려버리는건 내 두려움이었구나. 나의 어릴적 아픔이 투영된것이었구나. 아이는 그렇게 비춰준답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는 당신 앞에 아이라는 우주가 넓게 펼쳐질거예요. 그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미 자명한 진리를 알고 있으며 사랑이 가득하답니다. 또한 당신 안에도 그런 우주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