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회사, 넥슨을 그만두다. (1)

나의 사랑 나의 회사

by 이지은

디자이너였던 나는 프로그래머인 남편보다 늘 연봉이 한참 아래였다.

게임 업계가 원래 그렇다.

디자이너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프로그래머 연봉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남편의 연봉을 뛰어넘은 순간이 있었으니

넥슨으로 이직을 하면서였다.


자비로운 넥슨은 내가 용기를 내서 써낸 희망연봉보다 몇백을 더 주겠다고 했다.

사내 연봉 테이블에 어느 정도 맞춰서 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단박에 연봉이 1200만 원이 올랐다.


적은 차이였지만 내가 처음으로 남편보다 연봉이 높아졌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껏 공부하고 일해온 기분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제가 넥슨에 붙었어요!!!"

"제가 이 사람 연봉을 이겼어요!!!"

아니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시댁에서도 저랬으니까.


엄마는 내가 타이어 만드는 그 회사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넥센'과 헷갈려했지만 상관없었다.


물론 연봉은 몇 개월 만에 다시 추월당했다.


하지만 넥슨이라는 회사는 여전히 나의 자긍심의 뿌리였다.

갓겜 '바람의 나라'에서 목검을 휘두르며 다람쥐 잡아 도토리 모을 때부터..

'카트라이더'에서 물풍선을 던지고 바나나 껍질 피하며 키워온 소중한 꿈이었다.


나는 그냥 사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여러분들 잘 보세요. 제가 저기로 걸어 들어갑니다~!)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은 금메달보다 더 빛이 났다.

(여러분들 잘 보세요. 이걸 갖다대면 이 문이 마법처럼 열릴겁니다~!)


회사에서 나눠준 넥슨 로고가 박힌 후드 집업을 사랑했다.

(물론 받을 때는 분위기에 맞추느라 '에이~ 이게 뭐야 촌스러워~'라고 말하긴 했지만)

동료들이 알면 부끄러울 정도로 회사를 사랑했다.

나는 뼛속까지 자랑스러운 넥슨인이었다.


일도 참 열심히 했다.

그리고 괜히 엔씨소프트 흉을 보고 다녔다.

(밤새 리니지를 했던 시간은 기억에서 삭제함)


이제 이곳이 나의 둥지였다.

그래, 난 여기서 뼈를 묻고 싶었다.


입사할 때는 출산 계획이 전~혀 없었지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만났을 때는 꼭 걸어 잠근 마음도 틈이 생기는가 보다. 스멀스멀 아이 생각이 들더니 한창 일 많을 때 팀장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역시 좋은 회사에 다니고 볼일이다.

10년 전 사회적으로 여성정책이 자리잡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서 총 15개월의 휴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느낌상 팀장님은 쬐~끔 울상인 것 같았지만 모든 직원들이 출산을 축하해주고 격려해줬다.


15개월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정말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애 보느니 밭 맨다"는 옛말이 있을까?


육아는 두렵고 외롭고 괴로웠다.

그 힘듬을 책으로 써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몇 권이 될 것이다.

(제목은 줄여서 '육두외괴'로 해야겠다.)


그럼에도 나를 버티게 해 준 한줄기 희망은 바로 "복직"이었다.

일단 어떻게든 어느 정도 키워내면 어린이집이든 친정이든 맡기고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

그곳은 향기로운 아메리카노가 흐르고 몇 시간이고 방해받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다.


바닥에 흘린 이유식을 주워 먹고

13번째 던져버린 숟가락을 다시 주워주면서

나는 탈출.. 아니 복직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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