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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다.

음식에 얽힌 감정

by 이지은

중학교 때쯤이었나.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콩나물 반찬에서 희미하게 이상한 냄새가 났다.


완전히 상해 버린 건 아니었지만..

이제 막 맛탱이가 가려고 하는 그 어느쯤의 애매한 냄새였다.

고추장에 비벼 비빔밥을 만들어 줬다면 캐치하지 못했을 정도의 잔잔한 향기.


용기 내어 조심 스래 엄마에게 말해봤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으니 그냥 먹으라고만 했다.


냄새를 못 맡았으면 모를까

알아버린이상 영 젓가락질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것만 먹고 있으니 엄마가 콩나물은 왜 안 먹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래도 쉰 것 같다고 말하자 엄마는 짜증 섞인 얼굴로 그릇을 낚아채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주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같은 년"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는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냥 먹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과 야속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우리 엄마는 전라도 분이시다

그래서 손도 크고 음식 솜씨도 좋으셨다.

기분 좋으신 날에는 상다리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리셨는데

메인 요리가 해물탕이라면 반찬으로 제육볶음이 산처럼 쌓여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날은 상위에 물주전자 올려놓을 자리도 없곤 했다.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잘 먹으면 참 좋아하셨다.

늘 인상 쓰고 있는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몇 안 되는 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웃는 엄마가 좋아서

배가 불러도 더 열심히 먹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음식 남기는 것을 싫어하셨다는 점이다.

버리느니 먹어치우라며 남은 음식을 공평하게 배분까지 해주셨다.

그럼 아무리 배가 불러도 그 마지막 조각을 먹어치워야 무사히?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어떤 날엔가는 밥그릇에 남은 밥풀 가지고도

농부인지 북한인지 타령을 하시며 무섭게 인상을 쓰셔서

김치 묻은 밥그릇임에도 물을 부어 싹싹 긁어먹었던 기억도 난다.

비위가 얼마나 상하던지~


농부 아저씨들!!!

진정 이런 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북한주민여러분들!!

내래 이렇게까지 해야 합네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식당을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 남편은 먹음직스러워 보여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어도 저걸 어떻게 다 먹나 싶은 마음부터 든다.

밥상에 깔린 듯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것이다.


이제 아무도 다 먹어치우라는 사람이 없는데도..

농부 타령 북한 타령은 잊힌 옛 가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다 먹어치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부담스럽게 먹을 때는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음식과 나와의 처절한 전투일 뿐이다.


한 숟갈만 더..

한 숟갈만 더..

하면서 부른 배를 움켜쥐고 결국은 다 먹어치워도 이제

혼내는 사람도, 잘 먹으니 이쁘다는 사람도 없다.

외롭지는 않다.

왜냐고?

내 친구 지방이가 생겼으니까...

(헤어지고 싶다. ㅠ_ㅠ)


한동안 몸에 밴 어릴 적 습관을 고치려고 이렇게 외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다!"

"버리는 음식 값보다 살 빼는데 돈이 더 든다!"

그리고 '나는 우리 딸에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엄마는 나에게 왜 그랬냐'며 베개를 두드리며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대물림이 무섭다고 종종 나도 간당간당한 음식을 먹어서 후딱 처리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 나와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밥상머리에서 행복한 기억을 주고 싶어 다시 한번 더 결심한다.


상했나 안 상했나 걱정돼 반찬통에 코 박고 있는 순간

이건 이미 버려야 할 음식이라고.

그리고 버릴 곳은 사람 입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봉투라고!


엄마는 여전히 손이 크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는 엄마가 쪄서 얼려 보내준 옥수수로 가득 차 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양이다.

며칠간 간식으로 옥수수만 먹었는데도 줄지를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한동안은 옥수수가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까?

나머지는 전쟁 시를 대비해 식량으로 비축해두어야 할 것 같다.

펑펑 울며 그 야속함이 흘려보내고 나니 엄마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그저 푸짐한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밖에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많이 억지로 음식을 먹었어야 했을 거다.


오늘은 냉장고 가득한 옥수수에 깔려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날 주방으로 도로 가져간 콩나물은 누가 먹었을까?

아니면 버렸을까..


부디 엄마가 먹지 않았기를..

엄마도 나도 소중하니까.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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