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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회사, 넥슨을 그만두다.(2)

왜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었나

by 이지은

휴직을 내고 아이만 키우던 15개월은 정말 더디게 갔다.

남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녀석이 제대하던 날 "어제 입대한 것 같은데, 2년 금방이네~"라고 말한 내 입을 꼬매고 싶었다.

(동생아 미안. 누나가 생각이 짧았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새댁은 젖이 참젖인가 봐~"라는 성희롱도 아니고 칭찬도 아닌 애매한 말을 할 정도로 아이는 뽀얗고 포동포동 귀여웠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 끝에 대망의 복직하는 날이 찾아왔다.

복직하고 얼마 안 돼서 회사는 판교 신사옥으로 이사했고,

나도 회사처럼 육아 인생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사옥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로비는 얼마나 크고 반짝반짝한 지!

프런트 직원분은 이렇게까지 이쁠일인지?

로비의 소파는 또 얼마나 푹신푹신한지!!

카페테리아의 빵은 또 얼마나 맛있고 아메리카노는 향기로운지!!


남편은 넥슨인도 아니면서 아침마다 로비까지 따라와서는 무슨 놈의 소파가 우리 집 침대보다 편하냐며 앉았다가 누웠다가 뒹굴거리다가 가격을 검색해보고는 깜짝 놀랐다가 카페테리아에서 내가 셔틀 해주는 라테 한잔을 마시고서야 자기 회사로 출발했다.

남편에게 "촌스럽게 왜 이래~ 빨리 가~!" 하면서도 나 또한 속으로는 내적 미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운동부족인 개발자들을 위해 사내엔 헬스장이 있었고

식당에는 다양한 메뉴와 함께 통통이들을 위한 칼로리 제한 식단도 있었다.

(이걸 날씬이들만 먹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중에 단연 대박인 것은

사내 어린이집 [도토리 소풍]이었다!

깨끗하고 넓은 데다가 키즈카페처럼 꾸며져 있어 내가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선생님대 아이 비율이 무려 1:3이었다.

(제일 아가반 기준)

한번 입소하면 원할 때까지 계속 다닐 수 있었고 회사 주차장도 지원됐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어린이집에 우리 딸이 당첨되었다!

만세!!


급한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려가 만날 수 있고

전용 마당에서 봄이면 텃밭놀이 여름이면 물놀이를 가을이면 낙엽 줍고 겨울이면 눈놀이하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이는 지척에서 최고의 시설에 맡겨져 있었고

휴직 전의 내 자리도, 동료들도 그대로였다.

쉬었다가 시작하니 일도 얼마나 재미났는지!

복직하고 첫 고과에서 내 인생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딸이 심각하게 등원 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는 어린이집 문이 보이기 시작하면 울기 시작했다.

"어으~~ 음마아아아아아~~~!" 하며 울부짖는 것이 마치 사형장에 끌려들어 가는 사형수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그 모습을 뿌리치고 돌아서는데 10년은 늙는 것 같았다.

오전에 그렇게 멘탈이 다 털렸다.


처음에야 우리 딸 말고도 그런 아이들이 몇몇 있었기에 마음이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적어지더니 나중에는 우리 딸만 처음 모습 그대로 사형수의 마지막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왜 너만 적응을 못하니'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게다가 아이가 늦게까지 자지 않기 시작했다.

불을 끄려고 하면 뒤집어졌다.

엄마가 얼마나 좋으면 이럴까 싶어 책도 읽어주고 놀아주다가도 어느 날은 불같이 화내며 아이를 울려 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아이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칭얼거리는 일이 많고 활동시간에도 누워서 쉬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떤지 보려고 살짝 내려가 봤다.

재미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멀리 구석에 누워있는 내 아이의 등이 보였다.

조그맣게 웅크려 손을 빨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후벼 팠다.

친정에 맡겨도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잠만 잤다.

주말에는 전혀 안그러다가 엄마가 출근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똑같았다.

나도 아이도 낮 밤이 뒤바뀌어 죽을 맛이었다.

아이는 온몸으로 '엄마와 예전처럼 함께 있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시간을 일 년을 버텼으니 오래 버텼다.


팀장님께 아무래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며 두 번째 뒤통수를 칠 때는 정말 면목이 없었다.

팀장님은 이제 뒤통수가 단련이 되셨는지 괜찮다며 나를 토닥여주셨다.


어린이집에도 퇴소 소식을 알렸다.

선생님과 작별인사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뒤에 나오신 선생님들 눈가가 빨겠다.

"유진아 잘 지내, 보고 싶을 거야" 하시다가 결국 또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는 "유진이 어머님 좋은 직장 그만두셔서 아쉬워서 어째요.." 하셨다.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아이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대답하는데

그제야 나도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바탕 어린이집 현관에서 울음판이 벌어졌는데

그 사이에 내 품에 안긴 딸만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제 엄마랑 집에서 지낼 수 있다면서 말이다.


마음을 씩씩하게 먹어보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커리어보다는 우리 딸이 훨씬 중요하지.'

'괜찮아. 실장님께서 맘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하셨잖아'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할수도 있어!'


송별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아주 조금은 쓸쓸했다.

돌아온 집에는 아직 너무 작고 귀여운 우리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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