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회사, 넥슨을 그만두다.(3)

퇴사 후 의 삶

by 이지은

퇴사 후 삶은 영락없는 전업맘의 삶이었다.

프리랜서는 개뿔!

외주 일감은 어디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보였고

그나마 찾은 것도 보수가 형편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처지가 아닌데

동료들과 함께 으쌰 으쌰 개발하는 기분이 안 나니

영 흥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를 케어하고 살림을 하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바빠서 퇴사의 허전함을 곱씹을 짬이 없었다는 것이겠다.


기질적으로 섬세한 딸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참 열심히 공부했다.


육아서와 육아강연에 푹 빠져 아이만 보고 살다가도

종종 복직을 권유하는 지인들의 연락을 받으면

며칠은 상상만으로도 설레어 발을 동동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린 딸이 맘에 걸려

감사하지만 다음에 뵙자고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키우자' 하며 미루고 미루다 보니

함께 일하자는 전화도 더 이상 걸려오지 않더라.

(이렇게 쉽게 날 포기하는 거니~!!)


우리 딸은 작은 일로 감동과 사랑을 주기도 하고

더 작은 일로 엄마 마음을 뒤집어 놓기도 하며

차근차근 커나갔다.

그 시간을 오롯이 겪으며 나도 베테랑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은 통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박보검과 송혜교가 나오는 "남자 친구"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였다.


박보검이 군중들 사이에서 송혜교에게 라면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결정적인 씬이었는데 그 배경이 너무 낯익은 것이 아닌가?


'아니 여긴 넥슨 로비잖아!'


어느새 박보검 송혜교는 보이지 않고 정들었던 건물만 보였다.

'맞아 안내데스크가 저렇게 생겼었지!'

'엘리베이터 타는 곳이 저렇게 생겼었어!!'

'언니들은 연예인들을 직접 봤겠구나! 좋겠다~!!!'


생뚱맞게 갑자기 그 타이밍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가 회사를 그만둔 지 5년도 넘었을 때였다.

박보검 송혜교를 직접 못 봐서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말이다.


처박아 놨던 옛 애인의 사진을

누군가 갑자기 면전에 들이민 것 같았다.

'너 아직도 얘 못잊었니?'

외면하고 있었을 뿐 여태 가슴에 품고 이별을 못하고 있었나 보다.


멋들어진 최신 엘리베이터도

목에 걸고 있었던 사원증도

다정했던 동료들도

이제 다 내것이 아니었다.

그 날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별을 했다.


"잘 가시오 내 소중한 사랑~ 행복했었소~"


옛 애인이 떠나야 새 애인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그맘때쯤부터 찔끔찔끔하던 디자인 외주작업을 차츰 줄였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열심히 배우러 다니던 시간이 7~8년이 되다 보니 그곳에서 감사한 인연이 닿아 이제 내가 '사랑으로 육아하는 법' '내면 아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알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딸아이 손을 잡고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 길에 상실도 아픔도 있었지만 난 지금의 내 삶이 맘에 든다.

무엇보다 아이 손을 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살아낸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예전의 나처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냐고 물어오시는 어머님들이 계신다.

특히나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린다.

그것 말고도 사랑을 전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고

엄마가 행복할 때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전업맘을 택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용기와 패기에 박수를 쳐드린다.

고생길이 훤~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삶에서 엄청나게 성장하게 되실 거라고 응원해드린다.

나도 그렇게 성장했고 새 길을 찾았다고 말이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