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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년을 넘게 운전하던 여자라고..

by SingleOn

캘리포니아의 경우, 내가 가지고 있던 한국에서의 운전 면허증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운전면허를 새로 취득해야 한다. 미국의 일부 주(州)는 교환도 가능하다던데, 나는 어떻게 이런 행운도 안 따르는 것인지, 또 한 번 푸념을.. 미국에 와서 이 것 저 것, 많은 것들을 새로 취득하고 준비하면서,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 자본을 누리고 살았는 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시험을 칠 언어로 한국어가 적절한지 영어가 적절한지도 살펴봐야 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한국어로 시험 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오히려 약간 어색한 번역 때문에 차라리 영어가 나은 건가,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매 순간 나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구나, 젠장.. 어쨌거나 고민 끝에 영어로 된 기출문제를 출력해서 형광펜으로 주요 내용을 줄 쳐가며 공부한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 역시 공부는 벼락치기지, 하며 이게 뭐라고 혼자 뿌듯해하며 성취감을 느껴본다.


나는 운전을 곧잘 했다. 장롱면허로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커리어 초기에는 지방 출장이 많았는데, 그때도 항상 직접 운전을 해서 다녔고, 회사 출퇴근도 주로 차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장거리뿐만 아니라 복잡한 서울 거리에서의 운전도 익숙하고, 주차도 수준급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은퇴하면 대리기사를 할 거라고 말할 만큼 운전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보려고 운전대를 잡는데 팔과 다리가 너무 떨렸다. 운전면허를 따야 자동차 보험료를 인하시킬 수 있다는 절박함과 떨어지면 언제 또다시 봐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정, 모든 것을 빨리 세팅하고 생활에 안정을 찾고 싶다는 열망 등으로 인해 심장이 그렇게 미친 듯이 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 여기 와서는 왜 이렇게 하나하나가 힘들고 버겁기만 한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동안 잘해오던 걸 왜 내가 여기 와서 마치 처음 하듯 이렇게 다 하나하나 새로 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내 옆에 앉은 시험관이 말을 건다.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영어로 말을 할 건데 너 영어는 할 줄 아니?


속으로 생각한다. 너 어차피 영어로 밖에 말 못 하잖아,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네가 한국말로 해줄 거야? 다른 나라 말 할 줄 아는 거 있어?


하지만 웃으며 대답한다. 어, 그럼,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어. 걱정 마.

그렇게 시작된 실기 시험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그래서 나는 합격한 거지?라고 물었더니 시험관이 말한다. “어, 그럼, 너는 운전이 매우 익숙해 보인다. 그전에도 운전을 했었니?”


운전을 했었냐고? 야, 이 자식아, 내가 20년을 넘게 도시에서 운전하던 여자다! 그런 내가 미국에 왔다는 이유 만으로 지금 다시 시험을 보고 있는 거라고!! 너네 나라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속으로 외치고, 웃으며 대답했다. “어, 그럼, 한국에서도 운전했어.”

그렇게 입국 한지 2주 만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이게 또 뭐라고, 시험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 데, 뛸 듯이 기뻐서 접수대에 합격증을 내러 가는데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게 되더라는… 접수대 직원이 내 합격증을 받기도 전에 말한다. ‘저기서부터 널 봤는데, 누가 봐도 합격한 사람 같더라. 너무 행복하고 기뻐 보여’


어, 행복해. 내가 만 43세에 운전면허를 새로 취득했거든! 그것도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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